이규화 논설위원실장
![[이규화 칼럼] 조국 사퇴는 시작일 뿐이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910/2019101602102269660002[1].jpg "[이규화 칼럼] 조국 사퇴는 시작일 뿐이다")
"문재인 정권의 향방은 '조국사태' 이전과 이후로 갈릴 것이다." 광화문에서 '조국 구속'과 '문재인 하야'를 외친 국민들의 심중에 자리한 향후 정국 전망이자 소망이다. 그들이 거리로 뛰쳐나오지 않았던들 과연 조국 장관이 사퇴했을까? 최소한의 사리분별력을 갖춘 국민이라면 이렇게 느꼈을 게 분명하다. '지난 2년 5개월 동안 우리가 너무 고분고분하게 있었구나.'
조국 사퇴를 만든 국민들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자신들이 '대통령의 시어머니'라는 사실을 이번 조국 사태를 계기로 깨달았다. 그러잖아도 문대통령의 언행과 정책이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앞으론 시어머니로서 건건이 '간섭'할 것이고 바로잡으려 할 것이다. 시어머니에게 곳간의 열쇠가 있는 것처럼 국민에겐 헌법이 있기 때문이다. 조 장관이 사퇴했다고 하여 호랑이가 된 국민이 다시 양으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조국 사퇴는 시작일 뿐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진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조국사태로 상처받았겠지만 그보다 더 큰 내상을 입었을 국민들을 보듬는 말을 했어야 했다. 잘못된 인사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했다. 그러나 갈등을 야기한 점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라는 남 말하는 듯한 겉치레 사과가 다였다. 심지어 "조국 장관의 뜨거운 의지와 온갖 어려움을 묵묵히 견디는 자세는 검찰 개혁의 큰 동력이 됐다"고 했다. 이 말에는 조 전 장관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간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눈여겨 본 사람이라면 그와 그의 가족이 위선과 허위, 내로남불의 백화점이었음을 아는데도 말이다. 문 대통령은 나아가 광화문의 집회와 함께 조국 사퇴를 이끌어낸 언론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언론의 성찰을 요구하며 "신뢰받는 언론을 위해 자기개혁을 위해 노력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맥락도 사실관계도 맞지 않는 말이다.
정권이 자유민주 헌법의 가치를 훼손한다고 느낀 국민들은 '조국이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했다. 조국이 잠자던 국민을 깨웠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그 말이 적용된다. 어쩌면 조국 사태가 문재인 대통령이 각성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조국 사태는 문 대통령에게도 선물이다. 문 대통령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 달이면 문 대통령은 임기 반환점을 돈다. 새 출발해야 한다. 지금까지 국정 방향과 거꾸로만 간다 해도 성공할 것이다. 우선 닥친 현안이 민주제의 가장 기본적 룰인 선거제개편 문제다. 패스트트랙에 올라온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제1야당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있다. 그런데도 여당은 군소야당과 합세해 통과시키려 한다. 선거제 개편은 잠복돼 있는 거대한 회오리다. 당리당략을 떠나긴 어렵겠지만 현실적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역시 패스트트랙에 올라와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처(공수처) 법안과 검경수사권 조정안도 여야가 극명하게 대치하고 있다. 공수처는 국민이 바라는 대로 검찰개혁이 된다면 하등 필요 없다. 검경수사권 조정은 정권의 손발이나 다름없는 경찰에 검찰의 권한을 떼어주는 위험한 발상이다. 공수처든 수사권을 쥔 경찰이든 모두 정권의 하수인이 돼 '괴물'로 변할 수 있다. 물론 이상 대로만 제도가 운영된다면 무슨 대수겠는가. 소위 사법개혁법안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연장도 문 대통령이 결단해야 할 화급한 문제다. 아무리 요리 재고 조리 재도 지소미아 파기는 자해행위다. 일본의 풍부한 대북 군사정보를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다는 것은 해국행위다. 다음 주 이낙연 총리의 방일 때 깨끗이 매듭짓는 게 좋다. 지난 8월 조국 사태가 불거질 때 여론을 돌리기 위해 지소미아 파기를 결정했다는 의심을 샀다. 국운을 한 장관 후보자와 맞바꾸는 일이라서 당치않다 생각했다. '조국이 사퇴했으니 지소미아도 원상회복 하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코메디일 것이다. 그러나 문 정부에서는 그런 비상식 소극(笑劇)이 비일비재하다.
끝으로 문 대통령은 이제 '북 김정은 바라기'에서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로 돌아와야 한다. 소득주도성장정책은 당장 폐기해야 한다. 세계 최고의 활력 경제였던 한국경제가 시들어가고 있다. 좌파정책의 실험장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는 응급처치가 필요하다. 원기를 회복할 때까지만이라도 반시장·반자본에서 친시장·친자본으로 선회해야 한다. 향후 정국은 조국사태 이전과 달리 전개될 것이다. 그 동력의 원천은 국민이다. 정권이 헌법의 길을 가지 않을 때 광화문 함성은 언제든 다시 울릴 것이다. 이제 국민의 눈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이규화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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