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미군 속인 `만세군` 열병식에 나타나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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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미군 속인 `만세군` 열병식에 나타나다
박영서 논설위원
1950년 11월 13일 펑더화이(彭德懷)는 총사령부에서 전투평가회의를 열였다. 2차 공세를 앞둔 중요한 시기였다. 그는 1차 공세의 의미를 설명한 후 갑자기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다. "38군 량싱추(梁興初)는 왔는가?" "예"라는 대답과 함께 38군 군장 량싱추가 벌떡 일어섰다. 펑더화이는 "희천에는 적 1개 대대만 있었을 뿐이라고 하던데, 왜 공격을 질질 끌다가 작전을 다 망쳐놨느냐"며 따졌다. "사실은… 그게…" 말을 끝내기도 전에 평더화이는 주먹으로 책상을 꽝 내리쳤다. "희천에 흑인(黑人)대대가 있었다고? 사람들이 너를 호랑이 장군(虎將)이라 부르던데, 무슨 놈의 호랑이 장군이냐, 너는 쥐새끼 장군(鼠將)이야, 이 자식아."

펑더화이는 욕을 하면 목소리가 커지면서 심한 표현을 해대는 스타일이었다. 이런 말도 내뱉었다. "나 평더화이는 별 재주는 없지만 읍참마속(泣斬馬謖)하는 재주는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한 량싱추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회의가 끝나자 량싱추는 머리를 푹 숙이며 밖으로 나왔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토하기 시작했다.

량싱추가 이렇게 욕을 먹은 이유는 흑인 대대 때문이었다. 평더화이는 량싱추에게 신속하게 희천을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정보가 입수됐다. 막강한 흑인 대대가 희천에 있다는 것이었다. 량싱추는 당황했다. 첫번째 전투에서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에 그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다음날 저녁 때가 되서야 공격을 개시했다. 하지만 흑인 대대는 아예 없었고 미군은 이미 이동한 뒤였다.

[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미군 속인 `만세군` 열병식에 나타나다


회의에서 량싱추를 호되게 질책했던 펑더화이는 2차 공세에서 그에게 중책을 부여했다. 적진을 침투·관통해 미군의 퇴로를 차단하라는 임무였다. 평더화이는 량싱추가 능히 해낼 것이라고 판단했다. 38군 예하 113사는 한국군 군복으로 위장하고 산길 72km를 죽을 힘을 다해 달린 끝에 예정 시간을 맞췄다. 도중에 미군과 조우했으나 미군은 그들을 한국군으로 착각했다. 포위를 끝낸 38군은 맹렬한 공격을 개시했다. 입이 딱 벌어진 펑더화이는 38군에게 승리를 칭송하는 전보를 보냈다. 전보 말미에 '38군 만세!'라고 덧붙였다. 이후 38군은 '만세군'(萬歲軍) 칭호를 얻게 됐다. 38군은 한국전쟁에서 3개의 '2급 전투영웅 연대', 두 명의 '1급 전투영웅', 4명의 '2급 전투영웅'을 배출했다.

중국으로 돌아간 뒤 38군은 수도 베이징 경비를 맡았다가 기계화 군으로 개편됐다. 1985년 집단군으로 확대되어 5개 사단과 3개 여단을 거느리고 있다. 2017년 편제 개혁에 따라 명칭이 82집단군으로 변경됐다. 현재 허베이(河北省)성 바오딩(保定)에 주둔하고 있다.

38군은 1989년 6월 톈안먼(天安門)사태가 터지자 다시 회자됐다. 38군에게 무력진압을 명령했는데, 군장 쉬친셴(徐勤先)이 항명을 한 것이다. 그는 "시위는 정치문제에 속한다. 따라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무력을 동원해서는 안된다"면서 명령을 거부했다. 그는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형기를 마치고 조용히 살던 그는 2011년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지난 일은 후회없다. 그것은 나의 선택이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지난 1일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 건국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만세군'이 보란듯이 참가했다. 미국과 벌이고 있는 총성 없는 무역전쟁에서 반드시 이기고야 말겠다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각오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앞으로도 승미(勝美)의 추억들이 계속 소환될 것으로 보인다. 대미전선에서 중국이 갈수록 독해지고 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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