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칼럼] 간토대학살, 아직도 사과 않는 일본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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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 칼럼] 간토대학살, 아직도 사과 않는 일본
박영서 논설위원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간토(關東)지역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5분 간격으로 세 차례 지진이 발생했다. 점심 식사 준비를 하던 시간이었다. 거의 전 가정에서 밥 하느라 불을 때고 있었다. 당시 집들은 대부분 목조였다. 불은 급속하게 번져나갔다. 오후가 되자 도쿄는 불바다가 됐다. 인근 도시 요코하마도 거의 잿더미가 됐다. 조선인 대학살의 시발점은 불탄 항구로 변해버린 요코하마에서 그날 밤 만들어졌다.

집을 잃은 수만명의 요코하마 시민들은 부두에 있는 세관 주위 들판에서 노숙을 했다. 목숨은 건졌지만 먹을 것이 없었다. 굶주린 사람들이 생각해 낸 것이 세관창고에 있던 식량이었다. 창고를 습격해 쌀을 구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피난민의 요구에 용감하게(?) 나선 인물이 한 명 있었다. 마침 그 곳에 피난해있던, 입헌노동당 총리라는 야마구치 마사노리(山口正憲)란 자였다. 그는 '요코하마 지진재해 구호단'을 급거 조직해 창고를 털었다. 이어 구호단은 요코하마 시내 상점들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총, 일본도, 곤봉으로 무장한 구호단은 붉은 완장을 차고 강도질을 자행했다. 약탈한 곳에는 적기(赤旗)를 꽂고 다녔다.

야마구치 마사노리는 희생양이 필요했다. 뒤집어 씌우기에 가장 적당한 대상은 사회주의자와 조선인들이었다. "사회주의자들이 조선인과 손잡고 폭동을 일으켰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라는 유언비어를 만들었다. 유언비어는 도쿄로 퍼졌고 언론매체는 이를 여과없이 간토 전역으로 전파했다.

흉흉해진 민심에 불을 확 지핀 인물이 이때 등장한다. 내무대신 미즈노 렌타로(水野鍊太郞)다. 그는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에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으로 발령받아 조선의 독립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자였다. 그는 이 유언비어를 간토 지역 내 경찰서와 경비대에 내보내면서 적당한 대책을 세울 것을 지시했다. 동시에 전국에 다음과 같이 타전했다. "도쿄 부근의 진재(震災)를 이용해 조선인이 각지에서 방화 등을 통해 불령(不逞)한 목적을 이루려고 한다. 엄중히 단속하라."

도쿄의 불탄 자취 위에서 '조선인 사냥'이 시작됐다. 자경단은 일본식 복장을 한 조선인들을 식별해 내기위해 발음이 어려운 일본어 문장을 말하게했다. "十五円五十錢(쥬고엔 고주센·15엔 50전)"이다. 이 발음이 조선인의 생사를 결정했다. 6661명의 조선인이 피살된 것으로 되어 있다. 도쿄를 흐르는 강물이 핏빛이 될 정도였다. 당시 일본 정부는 조선인 사망자를 233명으로 축소해 발표했다.

대학살은 외교적으로 문제가 됐다. 이런 야만적인 나라와 어떻게 정상적 국교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 있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일본 주재 각국 대사·공사의 공식 항의문이 외무성에 전달됐다. 외무성은 당황했다. 외국으로부터 구호물자도 받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에 조선인 학살은 금지됐다.

지난 1일 간토대지진 추도제가 도쿄의 한 공원에서 열렸다. 이날 아베 지지층과 우익단체 회원들은 맞불 집회를 열어 추도제를 방해했다. 한 우익 인사는 "조선인을 죽인 것은 학살이 아니라 정당방위"라고 외쳤다. 이날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역대 도쿄도지사들 대부분이 보내온 추도문을 보내지 않았다. 벌써 3년째다. 비슷한 시각,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시작 80주년 기념일에 폴란드를 방문했다. 그는 나치의 만행에 거듭 용서를 구하면서 "역사가 지어준 책임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식민지 시절 만행에 대한 사과나 배상을 거부하는 일본과 대조를 이루는 대목이다.

96년전 일본은 혐한 유언비어를 조장해 광기어린 한국인 살육을 저질렀다.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도 "학살은 없었다"면서 사술(邪術)로 역사의 진실을 무너뜨리려는 목소리가 거듭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침묵하면서 사과하지 않고있다. 일본은 역사를 정직하게 직시해야 한다. 피하지 말고 마주하면서 과거 만행을 사죄해야한다. 사죄야말로 화해의 전제조건이다. 없던 일로 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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