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남 칼럼] 4류 정치에 피멍드는 기업들

강주남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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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남 칼럼] 4류 정치에 피멍드는 기업들
강주남 산업부장
말 3마리(구입비 34억 원)가 시가총액 400조 원에 달하는 글로벌 초일류 기업을 뒤흔들고 있다. 대한민국 대법원이 지난달 29일 강요와 협박에 의한 피해자였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경영권 승계를 위한 묵시적 청탁자로 낙인찍으면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미중 무역 전쟁 격랑속에 일본의 경제보복까지 덮치면서 올 상반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반토막 났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퍼펙트 스톰'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 이 부회장 중심의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하고 있던 삼성은 이번 판결로 날벼락을 맞았다. 최악의 경우 콘트롤타워 부재,리더십 공백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작년 2월 이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이후 내놓은 3년 간 180조 원 투자와 4만명의 직접 채용 계획, 미래 먹거리 발굴과 인수합병(M&A) 등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삼성의 위기는 곧 한국 경제의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우리 수출의 24%, 법인세의 16%를 책임지고 있는 한국 경제의 주춧돌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코스피 상장사 전체의 4분의 1에 달한다.

주요 외신들도 이 부회장에 대한 상고심 판결 내용과 삼성과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관심을 쏟아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글로벌 무역 혼란 속을 항해하는 한국의 가장 큰 기업에 대한 법적인 불확실성을 되살리고 있다"고 했고, 뉴욕타임스는 "한국 경제에 필수적인 '기업 제국'에 더 많은 구름을 드리울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삼성전자의 사실상 리더인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다면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하고 있는 한국 경제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했다.

이번 판결로 한국 대표·간판기업의 이미지에도 흠집이 났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FCPA)' 적용 대상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FCPA는 미국 기업이 해외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거나 회계 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처벌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1977년 제정한 법이다.

'묵시적 부정한 청탁'을 인정한 이번 대법원 판결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벌이는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엘리엇은 지난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이 개입해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며 약 8700억원 규모의 ISD를 제기했다. 대법원 판결은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삼성에 유리한 조치를 취했다는 엘리엇 주장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을 다 감안하더라도, 재계 서열 1위 기업 총수도 죄를 지었으면 처벌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일각에선 일본과의 경제 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최일선에서 싸우는 장수를 '묵시적 청탁'으로 엮은데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다. 법적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원균의 모함으로 끌려간 유배지에서 돌아온 이순신 장군이 남은 배 12척으로 왜구를 격퇴시키는 드라마틱한 역사가 또다시 재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언제까지 우리는 전함이 12척 밖에 남지 않을 때까지 우리 자신을 스스로 망가뜨리는 과오를 되풀이 할 셈인가.

특히 '동병상련' 재계에선 청와대 요구를 모른 척할 수 없는 한국 기업 현실을 외면한 판결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의 요구로 최순실 모녀에게 제공한 금품의 성격은 '협박과 강요'에 의한 '청탁없는 요구형 뇌물'이라는 것이다. '무소불위'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기업 총수를 겁박하는데, 이를 거부할 수 있는 기업인이 과연 있겠느냐는 이유에서다. 작년 7월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인도공장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네차례나 '90도'로 깍듯하게 인사해 이른바 '폴더 인사' 논란을 낳았다. 현정부들어서도 청산되지 않는 '슈퍼갑' 대통령과 '고양이 앞의 쥐' 신세인 기업인의 관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재계 일각에선 '정부 정책 협조'와 '정경 유착'을 가를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정권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기업이 형사 책임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들어 현정부 고위 인사가 평창동계올림픽 기업 후원을 독려하거나 대북 사업 지원을 요청했을 경우 이를 들어주면 묵시적 청탁과 대가성 뇌물이 돼 처벌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재계 한 인사는 "묵시적 청탁으로 기업인을 엮는다면 많은 대기업 총수들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걷게 될 것"이라고 울분을 터뜨린다.

4류 정치가 일류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미국은 자국 기업을 위해 관세장벽을 쌓고, 일본은 한국 반도체를 견제하기 위해 핵심 소재 수출 규제에 나선 상황이다. 여기에 '타도 삼성'을 외치는 중국의 도전도 버거운데, 정작 우리 정부는 기업들을 적폐로 몰아 손발을 묶고 있다는 것이다. 한 기업인은 "예전엔 애로사항이라도 들어주면서 삥을 뜯었는데, 지금은 검찰·국세청 앞세워 뺨 때리고 뺏어간다"고 토로한다.

정치권에서 촉발된 중국의 사드 보복과 일본의 핵심 소재 수출 규제로 피해를 보는 것은 정작 우리 기업이다. 사드 보복으로 현대차와 롯데는 치명타를 입었다. 후폭풍은 현재진행형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당장 우리 기업의 피해가 불가피한데, 정치권은 소재 국산화를 이루지 못한 기업 탓만 한다. 대책이라고 내놓는 것이 천문학적인 혈세를 투입해 수년 내 자립을 이루겠다는 황당한 것 뿐이다. 기업이 당장 문을 닫을 판인데 5년씩이나 걸리는 대책이 무슨 소용이 있나.

'소득주도성장' 한답시고 2년 넘게 한국 경제를 망가뜨린 것도 부족해, 이제는 안보·경제 우방인 미국·일본과의 불협화음에 따른 손실까지 기업 탓으로 돌리려 한다는 불만도 나온다. 4류 정치권과 3류 관료가 세계적인 경쟁자를 꺾고 일류로 올라선 기업의 발목을 잡는 자해극을 벌인다는 소릴 언제까지 들어야하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검찰 수사로 이 부회장이 또다시 법정 공방에 발목이 묶이면서 글로벌 초일류 기업 삼성의 경영진과 임직원은 모두 만신창이가 된 상태다. 위기 돌파를 위한 동력을 모을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사기가 꺾였다. "한국에서 기업하기 참 괴롭다"는 재계의 불만이 장사치의 엄살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기업이 흔들리면 한국 경제의 앞날도 암울하다.

강주남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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