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목 칼럼] `공정 대한민국` 시퍼렇게 살아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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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29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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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 칼럼] `공정 대한민국` 시퍼렇게 살아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그토록 진보에 대한 갈망으로 인터넷을 달구던 세상이 갑자기 변했다. 법무장관 후보자 조국의 딸의 논문 저자 등록, 인턴쉽 경력, 이를 기반으로 한 대학 및 대학원 입학, 그리고 연이은 장학금 수령 등과 관련한 불공정 게임과 그 궁색한 변명을 지켜보며 겉과 속이 다른 진보 핵심인사들에 대한 경계 심리가 충만하고 있다.

밝혀진 사실들에 의거하면, 사태의 본질은 입시제도의 허점을 파고든 치밀한 자녀 스펙 쌓기 작업이 후보자 부부의 개인 인맥을 총동원해 전개된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면, 불법을 행한 것도 아니고, 치열한 경쟁사회의 생존본능을 가족단위에서 실천한 희귀한 처세술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온 국민이 상처받고 비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사회에서 보수와 진보간의 가치대립은 결국 공정사회 가치 밑에서 벌어지는 조그만 견해 차이에 불과하다.

한국 사회에서 누구나 상식적으로 공정하게 대우받는 세상은 자본주의, 사회주의, 남북통일, 재벌 및 검찰개혁, 북핵 폐기, 노동자의 해방 보다 더 큰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땅콩회항, 미투, 갑질 등 사회전반을 흔들어 놓았던 사건들도 결국 공정대우 위반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아닌가.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파동,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문제, 그리고 강제징용 판결을 둘러싼 한-일간의 갈등도 결국 국가간 공정대우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파고든 결과다.

거기에 다가, 그동안 진보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 고위공무원 선발에서 의도적으로 탈락한 많은 인사들, 공기업과 공공기관장 선발과정에서 배제된 전문가들, 특정 진보진영 출신으로 손쉽게 재외공관장에 임명된 운동권 인사들과 직간접적으로 경쟁했던 공무원들, 기수 파괴적으로 임명된 검찰총장에 밀려 사표 써야 했던 성실한 검사들. 그리고 이들을 지켜보고 있던 주변의 무수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쌓인 울분도 이제 한 고등학생의 공정 게임의 룰 위반과 그 부모에 대한 책임문제를 계기로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내로남불'이란 용어가 불공정 게임을 상징하는 국민 대표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후보자 본인의 재산 사회 환원 선언도, 청와대의 거듭된 사법개혁의 적임자라는 옹호도 민심을 잠재우기 역부족인 것을 보면, 정말로 청산해야할 적폐대상은 권력기관이 아니라 불공정 사회인 것 같다.

대한민국은 이제 공정사회 건설의 표준을 설정하는 길로 접어들었다. 정치, 경제, 외교, 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공정하지 않은 현상을 그냥 넘길 수 없는 민족성을 타고난 국가와 민족이다.

강대국에 대해 불공정을 감내하며 실리를 챙기는 일본식 외교술. 돈 있는 집안 자녀들의 기여금 입학을 허용해 그 자금으로 더 많은 가난한 집안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미국식 시스템. 군대를 면제해주는 대가로 받은 돈으로 더 많은 군인을 훈련시키는 터키식 징병제도. 중학교때 졸업성적으로 엘리트를 국가적으로 키우는 싱가포르식 교육제도. 모두 나름대로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한 제도들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

최저임금 상향조정, 근로시간 단축, 소득주도 성장 등 이념 지향적 경제정책을 모든 사회 구성원들 간의 공정성을 담보하도록 재검토해 수정하거나 속도를 과감하게 조절해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미·중·일·북한과의 외교관계도 무엇이 공정한가를 곰곰이 따져보고 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호르무즈 파병, 화웨이에 대한 보복, 강제징용 배상을 둘러싼 일본과의 갈등, 대북한 퍼주기 외교 등 민감한 사안일수록 공정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야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이념의 시대를 속히 보내고 공정의 시대로 복귀하는 것이 한민족의 모습이고, 진정으로 대한민국에서 적폐를 청산하는 길이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이념논리로 버티지 말고, 이미 밝혀진 사실에 입각해 공정 가치를 훼손한 고위공직 후보자는 국민 눈앞에서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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