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호 칼럼] 미국은 ‘실망’할 뿐이지만 국민은 두렵다

박선호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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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호 칼럼] 미국은 ‘실망’할 뿐이지만 국민은 두렵다
박선호 정경부장
지난 21일 '문재인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에 따른 후폭풍이 본격화하고 있다. 국론분열이 심화하고, 한·일 외교전 승리에 절실한 미국의 지지도 갈수록 요원해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22일(현지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공식 논평을 통해 '한국 정부' 대신 '문재인 정부'라 지칭하면서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반응에 우리 여론은 깜짝 놀랐다. 당초 우리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발표하며 "협의했다"는 말로 미국의 양해를 구한 듯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게 우리 정부의 반응이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곧바로 "미국이 희망대로 결과가 안 나와서 실망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담담함에 당혹스러울 정도다. 김 차장의 말은 "'문재인 정부'가 미국과 협의를 해 알아듣게 말했다. 그런데 미국은 계속 반대를 했다. 어쩔 수 없이 결행했다. 우리의 독단도, 그 쪽의 실망도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라는 의미다. 일견 속 시원하다.

'자주독립' 국가인 우리가 미국의 말을 들을 필요 있나? 성의껏 설명했는데 못 알아들으면 그만 아닌가?

하지만 곱씹을수록 김 차관의 말 속에는 현 정부의 근본적 문제가 숨어있다. 미국의 실망 역시 여기서 나왔다 싶다.

먼저 상식선에서 이야기하자. 협의는 왜 하는가? 상식적으로 상대방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내게 최선인 것'을 포기하고 '서로에게 차선이지만 모두에게 최선'인 답을 찾는 과정이다. 미국과 협의도 마찬가지다. 우리 조치에 미국의 지지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의 양해를 얻어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정부가 이런 상식조차 몰랐을까? 아닌 듯싶다. 사실 그게 더 문제다. 김 차관의 발언은 '우리 정부가 미국의 최소한의 양해도 필요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고, 그래서 미국의 실망도 "당연하다"고 한 것이다. 바로 문재인 정부 안보관의 편린이 엿보인다.

중국과 치열한 무역전 속에 문재인 정부의 이런 안보인식과 그로 인한 한·미·일 안보동맹의 흠결은 미국 입장에서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미국은 실망했을 뿐이지만, 우리 국민은 두렵다. 지는 게 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국의 실망은 한·일 경제전쟁에서 적의 승기를 키우고 우리의 승기를 낮추는 결정적 요인이다. 당장 나라살림은 갈수록 엉망이고, 이웃과 싸움이 벌어졌는데 주변 친구는 하나 둘씩 떠나고 있다. 정부가 그토록 아끼는 하나 뿐인 형제 북한은 지난 24일까지 이달만 벌써 5번째 미사일을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를 향해 쏴대고 있다.

정부는 "우리는 강합니다. 이길 수 있습니다"라며 기업과 국민에게 필마단기(匹馬單騎) 돌진을 강요한다. 하지만, 돌진하기도 전에 후방 지원부터 끊는다면 정부가 그토록 미워하는 일제 침략시대 친일세력의 대 국민 참전 구호와 다른 게 무엇인가?

더욱 두려운 게 우리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변화다. 미·중 갈등 속에 국제사회가 갈수록 '춘추전국' 시대를 닮아가고 있다.

패주(覇主)를 중심으로 한 다자간 사회가 전국 시대의 모습이다. 자국이익이 최고의 가치이던 시대다. 서로 독패(獨覇)를 다퉜고, 그 틈에 소국들이 고통을 받던 시대다. 춘추전국 시대 소국의 외교에 꼭 필요했던 것이 대국을 대하는 지혜였다. 정세를 읽고 흐름을 쫓는 것이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진리였다.

송나라 고사는 지금도 남아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송나라는 상업으로 흥해 국력을 키웠다. 송 양공 때에 이르러 주변국에 패주를 칭할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 양공은 지혜가 없고 자만했으며 경전 속 '인의'(仁義)만을 중시했다. 패주를 자청해 이웃국과 사이가 나빠지더니 결국 이웃 대국의 침입을 받는다. 강을 힘겹게 건너는 적군을 보고 '인의'를 내세워 쉴 시간을 준 양공은 결국 대패하고 나라까지 망하고 만다. 이 고사는 송양지인(宋襄之仁)이란 고사성어로 남았다.

언제부터인가 정부는 잘못을 지적하는 이들을 두려움을 부추긴다며 '친일파', '반민족주의자'로 내몬다. 오로지 자신만 옳고 다른 이는 다 틀렸다고 한다. 그러나 극일(克日)의 첩경이 국론통합에 있음을 아는가 모르는가. 인구, 경제규모 무엇으로 보나 적은 크고, 우리는 작다. 외부 큰 적을 앞두고 내부 분열을 조장하고 우방을 적으로 돌리면 어찌 이기겠는가. 지면 그 때 가서도 "당연했다"고만 말할 것인가. 미안하지만 그 때는 들어줄 국민조차 없을지 모른다.

박선호 정경부장 sh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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