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수 칼럼] `부품 자립`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예진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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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수 칼럼] `부품 자립`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예진수 선임기자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누구보다 생산성을 중시한 작가였다. 그는 희극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에서 부잣집 주인 프랭크 포드의 입을 빌려 "제 시간에 가기 위해 1분 늦는 것보다 3시간 먼저 서두르는 것이 상책이다"라는 금언을 던진다. 맥베스에는 "큰 일은 정오에 끝내야 한다"는 대사가 등장한다.

'셰익스피어라면 어떻게 했을까'(제스 윈필드 지음, 이병철 옮김/자음과 모음)라는 책을 보면 셰익스피어는 빈틈없는 사업가이자 투자자였다. 셰익스피어의 영국은 철저한 경제논리로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국제정세에 어두웠던 조선은 임진왜란 당시 국제적으로 앞서있던 세라믹 기술까지 일본에 강탈당했다. 뛰어난 도공들이 임진왜란 후 대거 일본으로 끌려갔다. 지금은 적지 않은 국내 기업이 세라믹 주요 부품을 일본으로부터 수입한다.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국제정세가 엄혹하다. 위기가 코 앞에 닥쳤는데 행동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허물어진다. 올 들어 국회 입법 기능이 두 달 넘게 마비됐고, 주요 정책 결정이나 대외 변수에 대한 대응도 굼뜨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큰 일을 정오에 끝내야 한다'는 격언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2년 3개월이 된 지금쯤 구조개혁이나 투자 활성화 등에서 실질적 성과를 냈어야 한다. 하지만 한계기업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설비투자도 8.8%나 감소했다.

자금이 전투에서 실탄과 같다면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무기는 셰익스피어가 그토록 강조한 생산성이다. 부품 분야 '극일'은 결의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일본이 핵심 부품·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 카드를 꺼낸 지 50일이 돼 간다. 50일 간의 값비싼 경험을 거울삼아 한국인 특유의 위기극복 DNA를 살려내야 한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기업을 옥죄는 각종 규제 정책과 반기업 분위기로 투자 의욕이 땅에 떨어졌다. 또한 일본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은 우리보다 많은 1년이다. 한국은 3개월 단위에 그치고 있고 6개월 연장 논의조차 표류하고 있다. 부품업계 뿐 아니라 반도체, 바이오, 게임업계 등은 경쟁력 핵심인 신제품 개발과 연구개발(R&D) 업무에 3개월 이상의 집중 근무가 필요하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여당이 추진중인 노동시간 단축을 유예시키는 법 개정이 반드시 성사돼야 한다.

중국산 부품과 가전제품 등이 물밀 듯이 국내 시장에 상륙하고 있다. 중국이 적지않은 범용 부품 분야에서 한국을 앞질렀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한 차원 높은 원천기술 확보가 화급해졌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부품이 언제든 무기화될 수 있다는 것을 동북아 주요 국가들이 깨달았다. 한국 뿐 아니라 중국도 일본에 의존해온 핵심부품 국산화에 착수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글로벌 밸류체인'을 흔든 것은 패착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지피지기가 필요하며, 차제에 일본에 대한 연구가 강화돼야 한다. 다산 정약용은 비록 일본을 방문한 적은 없지만, 일본의 기술, 제도, 문화 수준 등에 대해 적지 않은 기록을 남겼다. 다산은 유배지인 강진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일본에는 과거 제도의 폐단이 없었으므로 지금에 와서는 그들의 학문이 우리나라를 능가하게 되었으니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극일과 지일 모두 중요하다. 부품 무기화에 따른 위험을 회피하려는 기업 이해와 중국과의 초격차를 유지하려는 정책당국 의지가 일치하는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경제와 산업 구조를 업그레이드하면서 원천기술 기반을 튼튼히 해야 할 것이다. 현장에서는 2000년 이후 구조 개혁과 체질 개선을 게을리한 결과가 초라한 성적표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만난 공기업 대표는 "한국 기업이 100㎾급 에너지 설비를 개발하면 미국 유수 기업들은 150, 200㎾급 설비를 개발하는 식이어서 선진국 따라잡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비용 구조 개선, 최신 설비 도입, 서비스 혁신 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도 경쟁 기업들이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이를 따라잡는다.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서 새로운 발전 틀을 만들어 내야 한다. 산업화시대 진입 이후 산학연 협력이 지금보다 중요했던 때는 없었다.

예진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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