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섭 칼럼] 부품소재 ‘克日’ 20년, 실패의 교훈

최경섭 ICT과학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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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섭 칼럼] 부품소재 ‘克日’ 20년, 실패의 교훈
최경섭 ICT과학부 부장
소니의 '워크맨'은 80~90년대 신세대 문화를 상징하는 품목 중에 꼭 빠지지 않고 회자되는 물건 중의 하나다. 컴팩트한 디자인에 '자동 돌려듣기'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최첨단(?) 기술을 선도하면서 세계 시장을 평정했다.

또한 아날로그 시대, 일본 제조산업의 힘을 상징하는 대표 브랜드로, 동시에 일본 간판기업 소니와 일본경제의 부흥을 함께 한 제품으로 자리매김 했다.

최근 워크맨이 공개된 지 40주년을 맞아 일본 도쿄에서 특별전시회가 열렸다. 워크맨 40주년을 맞아 외신들도 소니와 일본경제의 '흥망성쇠'를 되새기는 기사를 게재했다. 일본 제조산업의 황금기를 대표했던 메이커에서 디지털시대, 아날로그 매니아들이나 찾는 골동품 신세가 된 워크맨. 한때 미국경제까지 위협하며 세계경제를 호령하던 일본경제의 추락. 소니 워크맨과 일본경제의 추락은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이처럼 묘한 연결고리를 갖는다. 2000년대 전후, 디지털 시장으로 급변하는 세계경제의 변화에 소니의 워크맨이나 일본경제 모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워크맨이 40주년을 맞는 요즘, 일본경제가 갈길 바쁜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국내 핵심산업에 대한 수출규제가 지난달부터 시행중인데 이어, 오는 28일부터는 한국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일본 부품소재 의존도가 큰 국내산업 전반에 큰 타격이 예상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도발에 나선 것은 한국경제가 반도체, 자동차 등 설비 및 조립산업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그 밑바탕이 되는 부품소재, 장비분야를 등한시 한 것이 빌미가 됐다.

실제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대일 무역적자는 지난해 224억달러를 기록해 전체 대일 무역적자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문제는 이들 품목의 대일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시도가 과거 20년 이전부터 진행됐지만, 무역역조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 1999년부터 부품·소재 분야의 대일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대책마련에 착수했다. 2001년에 부품소재 산업 육성을 위한 '부품소재 특별법'까지 제정해 범 정부 차원의 지원을 퍼부었다. 2010년에는 일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10대 소재 국산화 프로젝트까지 가동됐다. 근 20여년 동안 범 정부차원에서 부품소재 국산화 프로젝트에 5조원 이상의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쏟아 부었지만, 대일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반도체 '기술독립', '극일'(克日)을 위한 성과는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매년 천문학적인 규모의 부품소재 개발 프로젝트가 시행되지만, 과학계나 산업계 모두 예산 나눠먹기에 급급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한 정부나 사업자 모두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하다 보니, 국내 업체들이 원천기술을 확보하는데도 역부족이었다는 지적이다.

연구개발 비용이 너무 많은 기업이나 연구기관에 잘게 쪼개지고, 또 단기적인 성과를 도출해야 하기 때문에 국내 업체들은 기술 난이도가 낮은 범용제품 위주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반면 장기간의 기술개발을 요하는 핵심 부품소재는 진입장벽이 높아 일본 기업 차지가 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도발에 맞서 문재인 정부도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 당장, 일본의 수출규제 도발로 직격탄을 맞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분야를 중심으로 부품소재 및 장비 국산화에 향후 7년간 7조8000억원 이상의 예산이 집중 지원된다. 연간 1조1000억원 이상이 투자되는 대형 사업이다.

일본은 과거 부품소재 산업의 기술력 우위를 앞세워 한국경제의 심장부를 겨냥하고 있다. 정부와 산업계, 과학계 모두 단호한 대처가 요구된다. 그러나 한시가 급하다고 해서 과거의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될 것이다. 과거처럼 또 예산 나눠먹기, 보여주기식 프로젝트에 그칠 경우, 이번에도 부품소재 산업의 '기술혁신'은 요원할 것이다.

최경섭 ICT과학부 부장 ks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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