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한국반도체 기본기 다질 때다

이경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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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1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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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한국반도체 기본기 다질 때다
이경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반도체 산업에 빨간 불이 켜졌다. 70년대에 태동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많은 대내외 위기를 극복하고 오늘날의 위치에 올라섰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동안 겪어온 것 중에 가장 심각하고 원천적인 곳에 위험이 도래한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미국, 일본, 대만, 중국 등 다른 반도체 생산국보다 어떤 영역에서 어떠한 기술에 강점이 있길래 우위를 점할 수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반도체에서 세계 최초의 타이틀을 차지하게 된 사건은 1994년 8월의 256 MD램 반도체 개발이다. 당시 일본보다 앞서 개발에 성공하여 우리 언론에 크게 보도되면서 국민들에게 자부심이 되었다. 하지만 사실 128 MD램 개발에서도 이미 우리는 세계 최초의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다. 삼성 반도체가 내부적으로 128 MD램을 최초 개발하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하였으나 결국 일본에 뒤쳐지게 된다. 당시 일본에 지게 된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원인이 도출되었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반도체 공정 설비를 미국, 일본 및 독일로 부터 도입하는 과정에서 내부 결재가 늦어진 점이 크게 부각 되었다.핵심 설비를 도입하기 위한 의사결정 품의서에 도장이 20개가 넘게 찍혀 있었고 결재를 진행하는 과정이 수개월이 넘어서 결론적으로 일본에 수개월 뒤처진 결과를 낳았다.

당시 삼성전자의 총괄 대표이사는 크게 반성하고 모든 품의서를 3단 결재로 바꾸어 극적으로 의사결정 지연 시간을 단축하고 때로는 상급자가 먼저 결재를 할 수 있는 공격적 관리라는 개념을 만들어서 현장 경영을 크게 강화하였다. 이후에 반도체 설비 도입에 관한 품의는 빠른 의사결정을 얻을 수 있었고 이어서 256 MD램의 최초 개발에 기여하게 된다.

위 사례를 보듯이 우리의 반도체 산업은 원천 재료 및 설비부터 기술력을 확보한 것이 아니고 반도체 생산의 공급 사슬에서 우리에게 강점이 있는 부분에 집중하고 그 효율을 최적화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점진적으로 경쟁사를 추격해 왔다. 이 가운데 3가지 정도의 강점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첫째는 대규모 자본력의 투입이다. 반도체 공정은 256 MD램을 개발하던 90년대에도 1개 생산라인 공장을 세우기 위하여 약 1조원의 비용이 투자 되었다. 오늘날 평택에 있는 반도체 공정은 1개 생산라인을 구축하는데 30조 정도의 총비용이 투자된다. 이 정도의 투자 규모는 일반 경영진의 의사결정 수준을 넘어서게 된다. 소위 주주의 입장에서 회사 전체의 리스크를 안고 의사결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중후장대한 업의 특성이 있다. 물론 오늘날 이 정도의 투자는 중국의 경우에 집약된 자본력을 가지고 주주가 개입하지 않아도 국가 정책으로 투자가 가능하겠지만 이는 국가 체제의 특성을 감안하여 비교해야 할 것이다. 결국 한국은 이러한 의사결정이 가능한 환경에 있었고 삼성을 이어 현대, LG 가 투자를 이어갔다.

두번째는 단기간에 공정기술의 집약과 향상 역량이다. 일반적으로 반도체 공정이 새로이 구축되면 시험생산을 할 때 웨이퍼 당 불량이 아닌 양품 칩의 비율이 50% 이하 정도로 무척 낮다. 하지만 구축 후 일정기간 동안 새로운 공정을 최적화 하기위한 생산기술에 대하여 대규모 R&D 인력이 집약적으로 투입되어 단기간에 불량을 최소화 하고 양품률의 향상에 스트레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무조건 달성해 가는 전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도전에 들어간다. 결국 수개월 내에 수익의 균형점을 넘기고 이익을 극대화 하게 된다. 이 때 공정에서 수행 되었던 각종 테스트 및 최적화 과제의 결과는 반도체 설비를 납품한 업체에서도 절대 가질 수 없는 핵심 기술과 노하우가 되어서 특허로도 등록하지 않고 회사의 노하우 비밀로 관리하게 된다.

오히려 반도체 설비 회사들이 이 기술과 시험결과를 얻고자 설비 유지보수를 자청할 때 이를 거절하고 자체적으로 유지보수를 하는 비밀 영역을 설정하기도 한다. 이를 블랙박스 전략이라고 칭한다. 아마도 이러한 노하우의 집적과 단기 최적화 역량은 매뉴얼에 기반한 일본의 생산현장 문화도 쉽게 따라오기 어려우며, 미국은 물론 중국의 추격도 쉽지 않을 것이다.

세번째는 인력을 공급하는 환경이다. 국내에서 영재고와 과학고 및 과학에 재능이 있는 과정을 거치고, 대학과 대학원에서 화학, 화공, 재료, 전자 등 반도체 관련 전공을 하고 기업으로 진출하는 고급인력의 풀은 전세계 최고의 인재 유입 환경이다.재료부터 부품이 계열화 되어있는 일본의 산업 구조에서 공급선을 바꾼다는 것은 엄청난 산업구조의 변화일텐데, 이러한 전략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일본의 실행 의지를 실감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구조 상 원천에서부터 현장까지 모든 것을 국산화 하거나 회사에 내재화 하는 것은 오히려 비용 상승의 원인이 되고 수익구조가 바뀌어 근원적인 업의 개념에 도전을 불러 일으킨다.



지금은 전략이 필요하다. 거시적인 변화의 틀은 물론이고 면밀히 재료 및 설비의 수급에 대한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한 회사의 역량을 상세히 분석하여 데이터베이스화 하여야 한다. 재료 한개가 바뀌어서 전체 공정을 다시 최적화 하여야 하는 리스크도 분석하여 모듈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오히려 내부의 핵심역량을 지켜내야 한다. 공정에서 새로운 재료의 투입으로 인한 각종 노하우 정보가 시장에서 경쟁이 되고 대안이 되는 해외의 다른 회사로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할 일은 너무 많으나 모든 결과는 항상 전체의 거시적 목표와 부합하는지 리더에게 묻지 말고 개개 연구원이 스스로 대안을 마련하여 계급장 떼고 라운드 테이블에서 격의 없이 논의해야 한다. 항상 나라는 민초가 지탱해 왔다. 산업현장의 생산 및 제조 라인에서 직접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역군이 부가가치 창출의 근원이며 거대한 생태계를 움직이게 하는 동인이다. 혼란스러운 뉴스로 일이 손에 잡히기 어려운 환경이나 이럴때 일수록 근본으로 돌아가 기본기를 관리하며 목표로 나아갈 때 선배들의 응원도 헛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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