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분쟁과 일본의 수출규제로 증시가 폭락하고 환율이 요동치자 우리나라 경제·금융 수장들이 한데 모여 불안 심리 잠재우기에 나섰다. 이미 준비해 놓은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에 따라 신속하고 과감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이다.
7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최종구 금융위원장,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일본의 수출규제와 미중 환율 전쟁 등으로 인한 시장 상황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 거시경제금융회의를 가졌다.
홍남기 부총리는 모두발언을 통해 "최근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는 대내외 리스크 요인이 단기간에 중첩돼 나타난 결과"라며 "증시 수급안정 방안, 자사주 매입규제 완화, 공매도 규제강화 등을 통해 시장 상황에 따라 적기에 신속하고 과감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최근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상당히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가 확대되고 미중 무역갈등이 격화되면서 글로벌 증시가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이고 있고, 국내적으로는 대외여건 악화에 따른 수출·투자부진과 기업실적 악화, 일본의 수출 규제 등이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 지난 5일 코스피와 코스닥은 동반 급락해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50조원 가까이 증발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6일 장중 1220원을 돌파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이주열 총재도 "최근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의 수출규제 등으로 인해 국내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됐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대외 여건의 전개양상에 따라 시장이 수시로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있다"며 "현재로서는 금융· 외환시장의 안정에 역점을 두어야 할 상황이므로 한국은행은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시장 안정화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당국은 시장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준비된 계획에 따라 시장 안정 조치를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날 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금융위는 여러 차례 시장 전문가와 간담회를 해왔다"며 "자세한 내용은 말할 수 없지만 몇 가지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공매도 규제하는 강화 방안은 이미 검토를 마쳤고 언제든지 시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 위원장은 "한 가지 대책만 있는 게 아니고 여러 가지 옵션(선택사항)이 있다"며 "공매도 제한 강화와 자사주 규제 등 언제 어떤 조치를, 어떤 강도로 사용할 것이냐는 시장상황에 따라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홍 부총리는 "일본 수출 제한 조치로 인한 일본 자금 유출 단계까지 가지 않는 게 바람직하지만 그 상황이 혹시나 오더라도 우리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은 제한적으로 정부는 분석하고 있다"며 "우리 여신·채권·주식시장에서 일본계 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지 않고 정부의 대처 역량 따져볼 때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추가 금리 인하를 묻는 질문에 "상황 변화에 따라 필요하면 추가적인 대응을 고려해볼 수 있지만 아직은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며 "지금 이 자리에서 추가 인하 여부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이날 거시경제금융회의는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인 2017년 9월 4일 이후 처음으로 부총리와 한은 총재가 참석했다. 통상 기획재정부 1차관이 주재하는 회의체이지만 이날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고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이후 시장 상황 등을 논하기 위해 금융·외환 시장을 책임지는 4개 정책당국 수장들이 머리를 맞댔다.
한편 이 회의에서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을 다음 달까지 두 달간 75% 이상 신속히 집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반기에 진행될 민간·민자·공공투자사업의 애로요인을 밀착 점검하며 투자를 견인하는 데 정책적 역량을 집중한다. 진현진기자 2jinhj@dt.co.kr
7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긴급거시경제금융회의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완쪽 세 번째)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왼쪽 첫 번째),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왼쪽 두 번째), 최종구 금융위원장(오른쪽 첫 번째)이 질의에 답하고 있다. 진현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