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학길 칼럼] 日수출규제는 소아병적 자충수다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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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0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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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학길 칼럼] 日수출규제는 소아병적 자충수다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일본 정부가 지난 8월 2일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시키는 제2차 경제제재 조치를 단행하였다. 일본은 자국의 안보와 관련해 협력하는 국가(미국 영국 독일 등 27 개국)에게 백색국가라는 라벨을 붙이고 무역, 비자 등에 혜택을 주어왔다. 이번 조치로 일본은 사상 처음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한 나라(한국)를 제하는 초강경 경제조치를 단행한 셈이다. 한국 정부는 WTO 제소는 물론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GSOMIA)의 폐기까지 검토하고 있다.

최근 간행된 UCLA 대학의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역작 '대변동(Upheaval): 위기, 선택, 변화'가 한일 문제를 다루고 있어 한일간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게토를 방문했을 때 자발적으로 무릎을 꿇고 나치의 전쟁범죄를 인정하며 폴란드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슈피겔'(Der Spiegel) 잡지의 표지사진을 재게재하고 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독일의 정치 지도자들이 피해 국민들에게 직접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데 반해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은 극히 피동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로 사과에 대신하려고 할 뿐 아니라 원자폭탄의 피해자라는 점만 부각시켜 가해자에서 피해자로의 둔갑을 획책해 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일본 내에서는 거의 무시하는 또 하나의 중대한 문제는 전쟁 기간에 일본이 한국과 중국에 취한 태도가 두 국가와의 현재 관계에도 미치는 영향이다. 제 2차 세계대전 기간과 그 이전에 일본은 아시아 국가, 특히 한국과 중국 국민에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일본은 35년의 강점기에 한국인 여성들에게 일본 병사들을 위한 성노예로 임하도록 강요했고 많은 한국인 남성은 일본 군대에서 사실상 노예노동자로 일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조치는 쌍무적인 보복조치를 금지하고 상호호혜주의를 천명한 WTO의 최혜국 규정을 명백하게 위반하는 조치다.

일본 정부는 국가안보상의 이유로 제한적인 수출규제조치가 가능하다는 예외조항을 적용받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만일 WTO 가 이 같은 예외 조치를 인정하는 경우, WTO는 미중무역분쟁의 와중에서 무력한 다자간 무역협의 기구로 전락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일본은 1980년대 초 미국 의회로부터 슈퍼 301법안에 의해 일본 자동차의 자발적 수출규제조치라는 굴욕적 수출규제 조치를 이행할 수 밖에 없었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자발적 수출규제는 오히려 일본산 자동차 수입가격의 급상승, 이로 인한 서민들과 중산층 소비자의 피해 확산으로 이어져 미국 정부는 유럽국가들과 연합해 1985년 9월 엔화 절상-달러·파운드·유로화 절하를 유도하는 '플라자 합의'에 이른다. 결국 무역분쟁의 종착역은 언제나 환율조정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중무역분쟁은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함으로써 종착력으로 접근하고 있다.

일본의 일방적 대(對) 한국 경제제재 조치는 미국의 대중국 무역제한 조치와는 달리 지속적인 무역수지 흑자국이 무역수지 적자국에 대해 단행한 조치라는 점에서 명분도 실리도 없는 조치가 될 것이다. 다만 한국 정부는 이러한 역풍 속에서도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의 폐기보다는 미국·일본과의 3국동맹에 더욱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경제이론의 하나인 게임이론적인 관점에서도 일본과의 무역분쟁은 국력이나 무역 규모, 기술 선진도 면에서 한국이 약세이기 때문에 대칭적 게임이 아닌 비대칭적 게임이 될 수 밖에 없다. 한일 간에 벌어질 장기적인 비대칭적 게임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가능한 한 미국이나 중국과의 부분적인 연대가 불가피하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한국 경제가 가치사슬로 이어진 국제분업 체제에서 얼마나 취약한 구조의 한 부분을 담당해 왔는지를 깊이 인식해야 한다. 중요 핵심부품의 국산화는 장기대책으로 추진하되, 보다 비싼 가격으로라도 핵심부품을 미국 대만 중국 및 유럽 제품으로 대체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주력 생산품인 반도체와 이동전화기 및 기타 ICT 장비가격으로 가격이전이 불가피하며 이는 곧 일본 전자업계에 부메랑 효과를 미칠 것이다. 일본도 경제보복의 종착역은 항상 자국만의 이익으로 귀착되지 못하였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1985년 플라자 합의와 그 후유증으로 경험한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20년'의 교훈은 일본의 대한국 경제조치들이 얼마나 소아병적인 자충수가 될 것인지를 예측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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