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권유로 입문… 30년 화려한 정치역정, 이젠 유일한 `정치 9단`으로 여의도 지켜 [박지원 국회의원에게 고견을 듣는다]

박지원 국회의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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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권유로 입문… 30년 화려한 정치역정, 이젠 유일한 `정치 9단`으로 여의도 지켜 [박지원 국회의원에게 고견을 듣는다]
박지원 국회의원

박동욱기자 fufus@


[]에게 고견을 듣는다
박지원 국회의원


"그 9단들은 모두 거(去)하셨고 유일한 생9단은 이렇게 찌그러져 있지 않냐." 박지원 국회의원은 자신을 '정치9단' 3金에 비유해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회한을 숨기지 않았다. 정치자금법 등 위반으로 굴곡을 겪었지만 정치역정은 누구보다도 화려했다.

30년 정치경력에서 그만큼 생존력을 발휘한 이도 드물다. 물론 박 의원한테는 논쟁적 요소가 적지 않다. 지금도 인터넷 여론장에서는 그를 견제하고 폄하하는 말들이 무성하다. 하지만 지금 딱 그에게 어울리는 설명은 '강하고 바른 자가 살아 남는다'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하고 바른 것일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영원한 DJ비서실장' 박지원 의원의 정치인생은 故 김대중 대통령을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다. DJ와 인연은 198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DJ가 미국에 타의로 외유 중일 때 뉴욕한인회장으로 인연을 맺은 일화는 익히 알려졌다. DJ 권유로 귀국해 정치에 들어서면서 그와 DJ의 30년 '주군관계'는 줄곧 굳건히 이어졌다. 오랜 정치이력에 비해 4선에 머문 것은 김대중 대통령 당시 최지근거리에서 청와대 수석, 비서실장, 문화부장관 등으로 DJ를 보좌했기 때문이다 .

요즘 그의 반대 진영은 물러나라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에서도 말한 것처럼 아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는 실제 나이가 무색할 만큼 안색이 고르고 군인처럼 걷는다.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분명히 그를 다시 볼 것으로 예상된다.

△1942년 전남 진도 △1967년 단국대 상학과 졸업, 2009년 목포대 법학 명예박사, 2010년 조선대 경제학 명예박사 △1980년 미국 뉴욕한인회장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민주당 △1997년 국민회의 총재특별보좌역 △1998년 2월~1995년 5월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 △1999년 5월~2000년 9월 제2대 문화관광부장관 △2002년 4월~2003년 2월 대통령 비서실장 △2007년 3월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비서실장 △2008년 5월 제18대 국회의원 △2010년 5월 민주당 원내대표 △2012년 5월 제19대 국회의원·민주통합당(전남 목포) △2016년 5월~2016년 12월 국민의당 원내대표 △2016년 5월 제20대 국회의원·국민의당 △2016년 6월~2016년 12월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2017년 1월~5월 국민의당 대표 △2018년 9월~ 민주평화당 제1정책조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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