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주욱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
![[포럼] `리브라`가 가져올 천지개벽](http://contents.dt.co.kr/images/201907/2019073002102369660001[1].jpg "[포럼] `리브라`가 가져올 천지개벽")
리브라는 비트코인과 같이 블록체인 기반이지만 많은 점에서 뛰어나 기존 화폐를 대체할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첫째, 비트코인의 최대 단점인 가격 변동성을 제거했다. 리브라는 스위스 은행에 예치하는 달러, 유로, 엔등 기존 화폐들에 연동해 발행되는 '스테이블 코인'으로 가치 저장 능력이 있다. 둘째, 평균 30분 이상 걸리는 비트코인의 결제 시간을 수 초 단위로 줄여 비자, 마스터카드나 페이팔등과 경쟁할 수 있다. 만 개 이상의 불특정 노드들이 합의하는 비트코인 알고리즘 대신 수십 개의 정해진 노드들만 합의하는 허가형 블록체인을 쓰기 때문이다. 셋째, 비트코인의 수만 배에 달하는 사용자 기반이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페이스북 24억 명, 왓츠앱 15억 명, 인스타그램 10억 명의 사용자들을 일시에 연결해 기존 화폐 질서에 대한 핵폭탄급 파괴력을 가질 것이다.
이 엄청난 파괴력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산업계와 정치권으로 나뉘어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자, 마스터카드, 우버, 이베이, 페이팔 등 27 개 거대 기업들이 서둘러 리브라 협회에 가입하고 출자했다. 천지개벽 수준의 사업 기회에 동참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동물적인 본능으로 아는 것이다.
반면 미국 의회는 청문회를 통해 리브라를 맹공격했다. 9-11테러 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한 브래드 셔먼 민주당 의원의 언급은 미국의 정치권이 느끼는 극도의 공포감을 대변한다. 실체를 모를 때 느끼는 공포가 가장 크다. 정치권은 리브라가 가져올 변화가 도대체 무엇인지 예측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더욱 격렬하게 반대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맥신 월터스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위원장은 위험 요소에 대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페이스북에 가상화폐 발행의 일시 중단을 요구했다. 한마디로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것이다. 결국 페이스북도 '규제 당국의 우려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고 그에 따른 승인을 받기 전까지 출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리브라를 둘러싼 대응은 서로 다르지만 돈의 미래에 대한 한 가지 확신을 갖게 만든다. 인터넷 시대의 돈의 이동이 은행과 법정 화폐 중심에서 벗어나 가상화폐를 통한 개인간 직접 거래로 바뀔 것이다. 사람들이 가상화폐를 통해 직접 거래할 경우 막대한 수수료를 챙기던 은행이나 신용카드회사들의 수익성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 세금을 걷는 데도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 은행이나 신용카드회사로부터 개인들의 금융거래를 투명하게 받아 보던 국세청은 가상화폐를 통한 수십 억 건의 개인 간 직접 거래에서 어느 길목을 지켜 거래 내역을 감시할지 모를 것이다. 국가의 통제력이 사라질 수 있다. 베네수엘라처럼 법정 화폐의 가치가 1년에 수천분의 1로 떨어지는 경우 국민들이 법정 화폐를 버리고 가상 화폐만을 쓸 것이다. 환율 관리나 금융 인프라가 취약한 저개발 국가들부터 가상 화폐의 희생양이 되어 사라질 수 있다.
비트코인 탄생 10년이 넘은 오늘 가상화폐는 이미 엄존하는 현실이 되어 세계의 금융 질서를 인터넷 시대에 맞게 근본적으로 혁신하려 하고 있다. 이 같은 혁신의 흐름을 특정 국가가 막기 어려울 것이다. 미지의 공포에 질려 무조건 거부하거나 억누르기보다 이 천지개벽의 변화 속에 숨어 있는 엄청난 기회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리브라 개발 책임자 마커스는 미 의회 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혁신을 주도하지 않으면 우리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다른 누군가가 통제하는 가상화폐를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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