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칼럼] 피해의식 버려야 일본을 넘는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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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2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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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칼럼] 피해의식 버려야 일본을 넘는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역사를 잃은 민족은 쇠망하며,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국가는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한다. 역사는 한편으로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이며, 다른 한편으로 오랜 세월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미래를 개척해 가는 나침반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역사를 제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올바르게 배우고 있는가? 그렇다고 쉽게 단언할 수 없다. 최근 역사교과서 논쟁 등 역사해석에 대한 이견이 있기 때문도 아니고, 한일관계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지 못함으로 인해 새로운 분쟁이 발생하기 때문도 아니다. 우리 역사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진지한 인식과 성찰이 기본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우리 역사교육의 비중이 줄어들고, 사회에서는 당장의 글로벌 경쟁에 필요한 외국어와 컴퓨터, 인터넷 등을 훨씬 강조하고 있다. 이는 마치 초기의 미국 이민자들이 자녀들의 미국사회 적응을 위해 한글조차 가르치지 않고 영어만 사용하도록 했던 것과 비슷하다. 당장은 미국사회에 적응하는데 편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문제들이 발생한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자기정체성에 혼란이 생기기도 하고 한국어를 비롯해 한국에 대한 기본적 지식조차 없기에 정작 기회가 생겨도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강점을 발휘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대한 가장 큰 오해의 하나는 이를 획일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글로벌 스탠다드는 나름의 보편성을 추구하지만, 그 안에는 엄청난 다양성이 녹아들어 있다. 예컨대 교육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이야기할 때 교육의 형식 및 내용의 질에 대한 보편적 기준을 제시하게 되지만, 이를 달성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학교마다 무한히 다양할 수 있으며,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 글로벌 경쟁이 진행되는 것이다.

이러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를 지워버리고 남들처럼 하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60억 인류가 함께 소통하는 글로벌 시대에 남들 뒤만 따라다녀서는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갖는 개성, 우리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형성된 고유성을 살려서 우리 식으로 경쟁하는 것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그렇기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공감을 얻는 것이다.

서구인의 역사와 문화, 서구인의 감성에서 출발한 여러 제도를 답습하는 것, 서구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마케팅을 하는 것으로는 결코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 그렇다고 유신시대의 '한국적 민주주의'나 '개발 독재'가 우리의 대안이라는 말은 아니다. 서구에서 배워야 할 부분과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고려하여 변형해야 할 부분을 제대로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보자. 약소민족으로서 늘 주변 국가들의 침략에 시달렸다는 생각보다 그 치열함 속에서 강하게 살아남았다는 점에 주목해 보자.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 주변국을 침략하지 않았던 것이 우리 역사의 자랑이라고 느껴보자. 그런 가운데 문화적 우수성을 자랑할만한 유산들이 풍부하게 갖춰 있고, 해방 후에는 짧은 기간에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부흥을 이뤄냈다는 점에 대해 충분히 자긍심을 가질 만하지 않는가?

우리 역사 속에, 그 주체로서 서있는 나를 긍정하자. 찌질한 국가, 별 볼일 없는 역사라고 스스로를 폄훼할 이유가 없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교과서왜곡처럼 역사를 왜곡하여 스스로를 위안하려 할 필요가 있겠는가?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긍정하고 그 안에서 나의 위치를, 우리가 함께 나아가야 할 길을 찾으면 된다.

굳이 역사를 미화하려 할 것이 아니라, 자신 있게 역사를 보면서 올바른 교훈을 이끌어내면 된다. 그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교과서를 바꾸려 할 것도 아니고, 과거의 일본 침략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인해 일본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할 것도 아니다. 당당하게 우리의 주장을 펴되, 제3자가 보더라도 합리적이라고 인정될 수 있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우리의 후대는 오늘날 우리의 행동을 역사 속에서 배우고 또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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