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삼성전자가 통상전쟁 리스크에 선제 대응하기 위한 돌파구로 미국 생산 확대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의 대(對)한국 소재 수출 규제를 계기로 앞으로 통상 리스크에 대비한 '안전지대' 확보가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안팎에서 압박을 받는 삼성전자의 상황에서 미국은 유력한 안전지역으로 꼽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당시 따로 지목하며 소위 '러브콜'을 보낸 만큼 세제혜택 등 상당한 간접 지원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내년까지 130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국내 투자를 진행 중이라 당장은 추가 여력이 없지만, 이후에는 생산기지 다변화와 현지화 전략을 취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22일 재계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달 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미국 현지에 추가 투자할지 여부와 대상 분야, 이로 인한 이해득실 등을 점검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에서는 가장 유력한 투자 가능성으로 가전·스마트폰 등 주요 세트 생산공장 건설을 꼽고 있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관세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이미 지난해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세탁기 공장을 세운 만큼, 추가 생산기지도 만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등 미주지역은 지난 1분기 지역 기준으로 최대 매출(10조6507억원, 별도기준)을 거두고 있는 삼성전자의 주요 시장이다. 최근 현지 내수시장이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고려 사항이다.
텍사스주 오스틴도 유력 투자지로 꼽힌다. 부지가 충분한 데다 현지에 구축된 연관 시설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는 퀄컴 등 주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수요업체가 있는 만큼, EUV(극자외선노광장치) 라인을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할 수 있다.
현지 정부의 친기업 정책도 유리한 요인 중 하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방한 당시 삼성전자 공장을 보고 감탄했다며 콕 집어 언급한 뒤,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에게 "미국에서 투자하고, 사업을 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데 지금보다 좋은 때는 없다"고 투자 확대를 당부하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만약 삼성전자가 미국에 주요 생산거점을 마련할 경우 일본이 여기까지 주요 소재·장비 수출을 제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의 공세가 미국 현지 업체들이 반도체·디스플레이 공급 차질로 이어질 경우, 트럼프 정부의 '자국 우선주의'의 공세가 일본을 겨냥할 수도 있어서다.
다만 현지 공장 건설은 자금 상황을 비롯해 제품 수요, 업황 전망, 기술 유출 가능성, 현지 상황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 만큼, 당장 이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이미 내년까지 180조원의 투자계획을 내놓았고, 이 가운데 130조원이 국내 공장에 이미 들어가고 있는 만큼 당장은 추가 투자 여력이 없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당장 구체적으로 추진되는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우선 소재 확보를 통해 기존 생산라인 가동 차질을 최소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뉴베리카운티에 위치한 삼성전자 생활가전 공장에서 직원들이 세탁기를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