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 칼럼] 안 팔겠단 나라, 안 사겠단 나라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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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18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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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원 칼럼] 안 팔겠단 나라, 안 사겠단 나라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일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서로 긴밀하게 의존하고 있는 두 나라가 사이가 틀어져서, 한 나라는 "네가 필요한 물건을 안 팔겠다"고 하고, 다른 나라는 "네가 생산하는 물건을 안 사겠다"라고 위협하면서 서로 상대방이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비대칭적은 대항수단 자체가 너무 서글프고 비현실적이다. 한 마디로 "안 팔겠다"는 나라에 대해서 같이 "안 팔겠다"는 수단으로 응수할 거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본도 "안 사겠다"라고 할 거리가 만만치 않게 있을 것인데…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안 사주면 그 생산과 판매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가 있다. 모든 것이 공급과잉, 과당경쟁에 빠져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다른 대체시장의 개척이 쉽지 않기 때문에 안 사주겠다고 하는 것이 위협이 될 수가 있다. 그런데 일본은 "안 팔겠다"는 수단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안 팔겠다"는 수단을 다 소진하고도 부족하면 "안 사겠다"는 수단도 추가로 쓸 수가 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말이다.

안 팔겠다고 하는 데 대해 안 사겠다고 응수하는 것은 별로 승산이 없어 보인다. 대체 공급원이 있느냐의 문제인데 일본은 이미 대체 공급원을 구하기 어려울 것을 간파하고 정부가 저지른 일인데 반해서 우리가 안 사겠다고 하는 것은 너무 즉흥적이고 감정적인데다 실효성에 대해 엄밀한 분석을 한 주도세력도 없는 것 같다.

우선 우리나라의 모든 주요 제품이 아직 핵심부품은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난 지금 사지 말아야 할 일제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불분명하다. 예컨대 이번에 일본이 안 팔겠다고 하는 부품, 소재가 들어가지 않고는 해당 제품을 만들 수가 없는데, 최종적으로 우리나라 기업이 생산했다면 문제의 부품 소재가 들어간 제품은 사도 되는가, 안 되는가? 일본제 소재, 부품이 생산원가의 몇 %를 차지하면 불매운동의 대상이 되는가? 또 우리나라 주력 기업들은 대부분 이미 외국인의 지분이 반이 넘는데 일본의 지분이 얼마나 되면 불매운동의 대상이 되는가?한일 합작기업의 경우 다 불매운동의 대상인가? 기술과 브랜드만 빌려온 것일 뿐 100% 우리 소유인 기업은 불매운동의 대상인가? 아닌가? 일본 경제의 저력은 부품, 소재에 있기 때문에 최종 조립을 일본 기업이 한 것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불매운동의 효과가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일본 관광을 가지 말자는 것에 이르러서는 더 이해가 안 간다. 최근 통계를 보면 우리 국민의 일본 관광은 2014년 276만 명에서 18년 754만 명으로 2.7배로 늘었는데 일본인의 한국 관광은 228만에서 295만으로 29% 늘었을 뿐이다. 그러니 서로 관광 안 가 주기로 한다면 일본이 더 타격을 입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경제활동을 애국심과 정치적 고려에 입각해서 해 달라는 것인데, 비록 우리 국민이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을 벌일 만큼 세상에 둘도 없는 애국적인 국민이라도 하더라도, 가성비가 떨어지는 선택을 오래 계속해 줄 리가 없다. 첨단기술의 부품, 소재 산업만이 아니라 관광마저도 우리가 경쟁력이 없어서 일어나는 현상인데 애국심으로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까? 특히 이같은 일본 관광의 증가가 젊은이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국내에서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지 못해서 일본에 가서 취업하라고 정부도 장려해 온 상황이 아닌가?

국민이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라면서, 은근히 국내 여론을 부추겨 또는 방치해서, 국제관계에서 협상력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이런 것은 기본적으로 우호관계가 유지되고 있을 때에나 가능하다. 일본도 우리나라와의 관계 악화를 국내정치 면에서 불리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반일감정의 격화는 정부가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데 운신의 폭을 제약하기만 할 것이다.

강자와 약자가 대립할 때 해결책은 흔히 강자는 명분을, 약자는 실리를 취하는 타협으로 귀착한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명분과 체면을 중시하는 나라인데 개인은 그래도 좋지만 적어도 정부는 그러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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