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 칼럼] 文대통령과 仁祖 그리고 이승만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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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 칼럼] 文대통령과 仁祖 그리고 이승만
이규화 논설실장
국교 정상화 이후 54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이 한국에 대해 안색을 바꿨다. 전에도 말로는 한국을 수시로 도발했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이번에 한국의 급소를 찔렀고 그 효과를 확인한 이상 일본은 수비적 외교에서 공세적 외교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 패러다임 쉬프트다. 갑자기 일본이 우리에게 '형'으로 부르라고 할 지 모른다.



일본의 '한국 피로감'이 깊어지고 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본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반 시민들까지 수출규제 조치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절반을 넘었다. 재일 한국인을 대하는 태도도 이전과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대일(對日) 경고를 쏟아냈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징용자 배상 판결에 따른 문제를 제3국 위원이 참여하는 중재위에서 풀자며 7월 18일까지 답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문 대통령이 이미 답을 한 셈이다.

일본은 18일 이후 전략물자 수출심사 특혜국 목록인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함으로써 한국에 부여해온 특혜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산업이 입을 피해는 두 가지 이유에서 헤아리기 힘들다. 첫째, 이런 일을 단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고 둘째, 워낙 한국의 일본 부품소재 의존이 광범위해 피해액 계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 말마따나 일찍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수출 투자 생산 고용 등 한국경제가 총체적 위기에 직면한 시점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안 좋을 수 있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국가신인도 파일을 들춰보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단합을 요청했다. '하지만 배의 사공이 뱃삯을 받는 데만 혈안이 돼 배가 위험이 처했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면 선객들이 어떻게 그 사공만 믿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고언을 새겨야 할 것이다. 구한말 1904년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을 때 청년 이승만은 한성감옥에서 쓴 '독립정신'에서 개방과 통상, 문물 진흥, 주권, 도덕적 의무, 자유와 외교 등 독립정신 실천 6대 강령을 권면했다. 특히 국가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외교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제법을 준수하고 외교정책을 편향되이 쓰지 말 것을 당부한 데서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읽을 수 있다.

잘못된 외교로 우리 역사에서 치욕적 결과를 낳은 대표적 인물이라면 조선 16대 왕 인조(仁祖)일 것이다. 서인(西人)과 인조는 후금과 명 사이에서 균형외교로 정국을 안정시킨 광해군을 쿠데타로 몰아내고 몰락하는 명(明) 쪽에 서면서 환난을 불러들였다. 인조는 청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항복의식을 치르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역사에서 가정은 하릴없지만, 인조반정이 없었다면 군적과 호패법, 대동법을 실시하며 임란 후 국정을 쇄신했던 광해군의 치세가 이어져 조선 후기의 양상이 많이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일본의 행위는 치졸하지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엄중한 국제관계에서 실력이 받쳐주지 않는 외침은 공허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물며 이번 사태는 문재인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문 정부 들어 위안부 합의 파기, 강제징용 배상 판결, 우리 해군의 일 초계기 사격 레이더 조사 논란은 일본의 누적된 불만을 터뜨리는 기폭제가 됐다. 한일청구권 협정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분쟁이 생길 경우 해결방안을 사전에 적시한 것이다. 그럼에도 문 정부는 8개월 동안 협상을 피하다가 일본이 예정된 보복을 감행하자 허둥대고 있다. 반푼 어치도 안 되는 명분에 갇혀 피할 수도 있었던 병자호란을 부른 인조의 조정을 보는 것 같다.

문 대통령은 국민을 사지로 내몰아선 안 된다. 이승만의 길을 갈 것인가 인조의 길을 갈 것인가. 이승만은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도록 자유를 지키고 단합해야 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국민을 결집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지도자가 올바른 길을 선택해야 한다. 오기와 허세를 부릴 때가 아니다. 정권의 이익이 아닌 국익을 위한 결정을 하길 바란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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