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남 칼럼] 고무줄 공시가격이 부른 재산세 불신

강주남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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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남 칼럼] 고무줄 공시가격이 부른 재산세 불신
강주남 산업부장
서울 송파구에 사는 A씨(69). 최근 세금납부 사이트에서 7월분 재산세 고지서를 확인하곤 깜짝 놀랐다. 공시가격 급등으로 재산세가 작년보다 26%나 급증했기 때문이다. 공시가격 13억원짜리 집을 보유한 A씨가 이달말까지 내야할 재산세는 203만원에 달한다. 9월분까지 합하면 모두 406만원이나 된다. 여기에 12월 종합부동산세까지 내면 보유세로 반년치가 넘는 연금이 고스란히 날아갈 판이다. 평생 벌어 겨우 마련한 집 한칸이다. 애들 놓고 키워 출가까지 시킨, 인생 희노애락이 담긴 보금자리다. 부동산 투기라곤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냥 교육여건 좋은 곳에 터 잡고 성실하게 살아온 평범한 가장일 뿐이다. A씨 같은 연금생활자에게 세금폭탄은 '호환마마' 보다 무섭다. 결국 A씨는 울며겨자먹기로 동네 중개업소에 집을 팔아달라고 내놨다.

A씨처럼 서울에서 '똘똘한 한채' 보유자는 요즘 영락없는 '집 가진 죄인' 신세다. 정부가 보유세 산정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을 대폭 올렸기 때문이다. 이번주 서울 25개 자치구들이 7월 재산세 고지서를 발송하면서 공시가격 급등에 따른 세금폭탄이 현실화했다. 특히 올해 평균 공시가격 상승률이 20%가 넘는 강남3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 한강변 주민들의 충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중산층도 공시가격 급등에 따른 후폭풍 사정권에 들었다. 6억원 초과 주택 보유자도 올해 납부해야할 재산세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서울 소재 아파트 중위거래가격이 6억2000만원임을 고려할 때 서울 주택 절반 이상이 이에 해당된다. 실제로 동작구 소재 전용 84.99㎡ 아파트의 경우 올해 공시가격이 6억원으로 산정됐다. 재산세도 138만원으로 작년보다 28% 이상 급증했다. 서대문구의 전용 84.95㎡ 아파트는 올해 공시가격이 6억원을 넘어섰다. 재산세도 27% 늘어난 155만4000원을 내야한다. 세금폭탄이 현실화하면서 각 자치구에는 수입이 없는 은퇴 고령자 등을 중심으로 단기간에 재산세를 급격하게 올린데 대한 불만 민원이 폭주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집은 사실상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만 60세 이상 노년층의 보유자산 중 집이 차지하는 비중은 85.2%다. 특히 최근에 주택연금에 가입한 2년차 가구의 주택자산 비중은 92.1%에 달했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변변한 은퇴 준비 없이 달랑 집 한 채 들고 노후를 맞는다. 그나마 집값의 21%는 은행 빚이다. 이들 중 대다수인 80.1%는 애들 낳고 키워 출가시킨, 인생 희노애락이 담긴 보금자리에서 계속 살고 싶어한다.

하지만 보유세가 단기간 급격하게 인상되면 국민연금에 의존해 살아가는 은퇴생활자는 집을 팔 수밖에 없다. 고정 수입이 없는 노년층이 연간 수백만원에 달하는 재산세를 감당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정의에도 어긋난다. 살고 있는 집은 값이 올라도 실현되지 않은 평가이익일 뿐이다. 팔아서 차익을 남긴 것도 아닌데 1년에 세부담 상한선인 30%씩 재산세를 올리는 건 횡포다. 집값 잡겠다고 무차별적으로 세금폭탄 때리는 건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다.

문재인정부는 2년여 동안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한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다. 임대사업자 등록제도나 무주택자 위주 청약제도를 개편했고 초강력 대출규제, 종부세 강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부활, 3기 신도시 건설 등 역대급 대책을 총동원했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도입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반짝 효과' 후 집값은 다시 오르기를 반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좌충우돌' 시장을 윽박지르는 수요 억제 정책 후유증으로 몇년 후 부동산 가격 폭등을 우려하기도 한다.

투기와의 전쟁을 한답시고 집 한칸 가진 국민에게까지 징벌적 세금을 물리는 것은 반시장적이다. 집을 넓히거나, 주거 여건이 더 좋은 곳으로 이사하기 위해 일시적 2주택자가 된 사람까지 투기꾼 취급하는 건 주거이전의 자유를 억압하는 조치다. 명의는 단기간에 환부만 정확하게 찾아 도려낸다. 아픈 곳을 찾겠다고 여기저기 해부해서는 환자를 살릴 수 없다.

수술 방법도 허술하고 미덥지 못하다. 보유세 과세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 산정기준은 '들쭉날쭉' 고무줄이다. 이 때문에 올해 공시가격 수정을 요청한 건수는 작년 대비 22배로 폭증했다. 이달초에는 서울 성수동 주상복합아파트 '갤러리아포레' 단지 전체 공시가격이 통째로 정정되기도 했다. 공시가격이 평균 6% 이상, 어떤 곳은 4억원이나 내린 곳도 있다. 이래서는 정부가 산정한 공시가격만 철석같이 믿고, 내라는 대로 꼬박꼬박 세금 낸 국민만 '봉'이 된다. 오락가락하는 공시가격 산정 방식과 허술한 검증 시스템이 재산세에 대한 국민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강주남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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