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한국을 '화이트 국가(백색 국가)'에서 제외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방침이 재확인 된 가운데, 반도체 장비와 웨이퍼의 일본 수입 의존도가 30% 이상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 때문에 일본이 '반도체 코리아'에 대한 정밀타격을 계속할 경우 적잖은 타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후 일본의 장비·소재 산업에도 부메랑처럼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14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MTI(수출입품목 분류체계) 6단위 기준 한국의 대 일본 주요 수입품목 1위는 반도체 제조용 장비로 나타났다.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올해 12억1200만 달러(약 1조4300억원) 어치를 수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반도체 제조용 장비 수입(35억8700만 달러)에서 일본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33.8%에 이른다.
반도체 등의 핵심소재로 꼽히는 실리콘웨이퍼의 경우 일본 의존도가 더 크다. 규모는 3억8500만 달러(약 4500억원)로 장비보다 작지만, 전체 수입(9억9400만 달러)의 38.7%에 이를 정도로 비중이 높다.
이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장비 경쟁력이 워낙 높아서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반도체 장비 시장 국가별 점유율은 일본이 28.2%로 미국에 이어 2위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실리콘웨이퍼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일본 신에츠, 숨코(SUMCO)가 각각 30%, 27%로 업계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체들의 일본산 웨이퍼 의존도는 거의 절반에 이른다"며 "그나마 장비의 경우 현재 메모리 업황 악화로 증설 속도도절 중이라 급하지 않고, 대체 업체도 있어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전체 실리콘웨이퍼 수입액은 전년 동기보다 6.1% 줄었는데, 일본산은 반대로 12.5% 늘었다. 그만큼 일본산 의존도가 늘었다는 뜻이다. 장비 역시 전년 동기보다 60% 줄었는데, 일본산 수입액은 58.1%만 감소했다.
이는 일본산 장비·소재의 경쟁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반도체 산업의 특성 상 소재나 장비를 교체할 경우 품질 테스트 등을 거쳐야 하는 만큼, 당장 일본산을 교체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포토레지스트(감광액)와 같은 일부 소재를 제외한 나머지 부문에서는 오히려 장기적으로 일본의 장비·소재 산업에게 '부메랑'처럼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장비의 경우 EUV(극자외선노광장치)와 같은 대체 불가능한 것이 아니면 국산화 혹은 수입 대체가 가능하고, 웨이퍼 역시 국내 업체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실리콘웨이퍼의 경우 SK하이닉스 관계사인 SK실트론이 현재 10%대로 업계 5위 수준이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수요업체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생산량을 빠르게 확대할 계기가 될 수 있다. SK실트론은 이미 앞으로 2년간 9000억원의 투자계획을 내놓았다.
장비 역시 도쿄 일렉트론(반도체 증착·식각) 등 일부 장비 업체의 경쟁력이 강하지만, 주성엔지니어링과 유진테크, 원익IPS 등 국내 반도체 장비업체들도 정부와 업계 지원을 바탕으로 이를 따라잡을 수 있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규제를 계기로 우리 정부와 업계가 힘을 모아 뿌리 산업을 키울 동력이 생겼다"며 "특히 세계 1·3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다는 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