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한·중 庭園 `닮은 듯 다른` 아름다움

박영서 논설위원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한·중 庭園 `닮은 듯 다른` 아름다움
박영서 논설위원
중국과 한국은 오랫동안 역사적·문화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고 받은 나라다. 그 중에서도 양국은 정원 예술에서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닮은 듯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중국에선 정원을 '원림'(園林)이라 부른다. 원림 예술은 은주(殷周)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원림은 식물 재배나 취미용 수렵을 위한 짐승의 방목지로서 조성됐다. 그러다 춘추전국 시대에 이르러 인공적 요소가 가미됐다. '유상곡수'(流觴曲水) 형태가 이때 나타났다. 구불구불한 인공수로 위에 특수 제작한 칠기 술잔을 띄워놓고, 술잔이 떠내려 오다 멈추면 그 앞에 있는 사람이 술을 마시는 방식을 말한다.

진한(秦漢) 시기에는 왕과 제후들이 감상용 원림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한무제의 '상림원'(上林苑)이다. 주위가 300여리에 이르며 그 안에 궁전 70여채와 산천·호소(湖沼)·삼림을 조성했다고 한다. 상림원은 식물원이자 동물원 겸 휴양지 역할도 했다. 위진(魏晉)시기에는 고관대작들의 화려한 원림이 등장했다. 서진(西晉)의 대부호 석숭(石崇)이 만든 '금곡원'(金谷園)이 가장 유명한 원림이다. 석숭은 관직을 이용해 재물을 긁어모아 중국 역사상 손 꼽히는 부자가 된 인물이다. 100여명의 처첩을 거느렸고 집안의 하인도 800여명이 됐다고 한다. 금곡원은 인공 연못과 개울을 파고 곳곳에 정자와 누각을 배치한 정원이었다. 남양(南洋)지역에서 수입한 진주, 마노, 상아 등으로 장식해 사치의 극을 보여줬다. 그는 이 곳에서 주연을 자주 열어 풍류를 즐겼다.

[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한·중 庭園 `닮은 듯 다른` 아름다움


당송(唐宋) 시기가 되자 문인과 묵객들이 개성 있는 각자의 원림을 소유하기 시작했다. '시후'(西湖)가 대표적이다. 명청(明淸)시기에는 조경기술이 안정화되면서 원명원(圓明園), 이화원, 쑤저우원림(蘇州園林) 등이 잇따라 등장했다.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신선 사상, 음양오행 사상 등 고대 중국의 사상을 흡수했는데, 신라 시대 안압지와 포석정이 그 예다. 안압지는 정원 안에 인공 연못을 파고 봉래, 방장, 영주라는 세 개의 인공 섬을 조성했다. 연못의 동쪽과 북쪽에 '무산십이봉'(巫山十二峰)을 상징하는 12개의 작은 구릉을 만들었다. 포석정은 유상곡수를 차용했다. 포석정은 물이 흘러 들어가는 입구에 돌거북이를 만들어 입에서 물을 뿜어내는 듯한 형태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후 한국의 정원문화는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을 거듭했다. 한국의 전통 정원은 인공적인 면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활용한 점이 중국과 다르다. 한국의 정원에는 중국과 달리 유랑(游廊·긴 복도)이 거의 없다. 산과 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정자와 누각을 지었다. 구멍이 뚫려있는 태호석(太湖石)도 쓰지않았다. 조선의 선비들은 투각되거나 구멍이 뚫린 바위는 감상적 가치가 떨어진다고 여겼다. 한국의 정원에는 자연의 순수함과 질박함을 살리고 자연에 묻혀 사는 삶을 추구했던 조상들의 가치관이 들어있다. '무기교의 기교'라 할 수 있다.

중국 베이징 옌칭(延慶)구에서 '2019 베이징 국제원예박람회'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오는 10월 7일까지 계속된다. 중국 정부 차원의 역대급 행사로, 2~3일은 걸려야 전체를 다 볼 수 있을 정도다. 중국 각 지방의 31개 정원 및 한국 북한 일본 영국 등 세계 41개국 정원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한다'(仁者樂山, 智者樂水)는 말이 있다. 한중 양국의 정원 예술을 비교해 보면서 자연과 더욱 가까워지는 삶을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좋을 듯 싶다.

박영서 논설위원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추천기사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타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