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풀린 일본계 은행의 자금이 18조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되면서 일본의 반도체 수출 제재 여파로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출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우리나라는 높은 수출 의존도를 가지고 있어 다른 국가들에 비해 금융시장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7일 한국금융연구원은 '글로벌 교역환경의 불확실성 증가의 영향에 대한 고찰'을 통해 우리나라는 글로벌 통상정책 불확실성으로 경제 성장이 저해되고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경향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글로벌 경제를 들여다보면 미국을 중심으로 촉발된 보호무역주의로 회귀와 다자협상에 의한 일괄타결 방식에서 복수국 혹은 양자 간 협상 방식으로의 전환을 골자로 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개편 논의 등으로 최근 들어 가장 높은 수준으로 불확실성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교역의 불확실성 확대는 단기적으로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고, 중장기적으로 기업들의 생산성을 저하시켜 경제성장 둔화로 귀결될 우려가 있다. 각국이 비교우위를 가진 분야에 특화하기 어려워 효율성이 감소하고 생산비용이 증가하는데, 다국적 생산 공정에 의존하는 기업일수록 생산비용이 증가해 생산능력 저하와 국가의 소비·투자·교역에 전반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쳐서다. 금융시장은 미래의 기대수익 감소로 자산가치가 하락하고 리스크 프리미엄이 증가해 글로벌 자본이 안전자산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불확실성 증대는 우리나라에 중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연구원의 분석이다. 우리나라는 2018년 다른 국가들로부터 교역 장벽을 높이는 382건의 개입 적용을 받아 중국·미국·독일·이탈리아에 이어 글로벌 보호무역화에 큰 영향을 받는 국가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최근 일본이 우리나라 사법부가 일본의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린 데에 대한 반발로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에 돌입하면서 우리나라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과 국제금융센터 등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미쓰비시파이낸셜그룹(MUFG)과 미쓰이스미토모(SMBC), 미즈호(MIZUHO), 야마구찌(Yamaguchi) 등 4개 일본계 은행의 국내 총여신은 18조2995억원이다. 지난해 9월(21조817억원) 기준으로 보면 일본계 은행의 국내 여신은 전체 외국계은행 국내 지점의 총여신 77조9000억원의 27.1%에 달한다. 중국계 은행(34.3%)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한국 금융시장에서 입지가 작지 않은 일본계 은행이 한국에서 회전시키는 자금의 규모나 속도를 줄이면 금융시장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금융연구원 관계자는 "글로벌 교역 불확실성이 해소된다 해도 우리나라에 미치는 중장기적 요인들에 의해 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당분간 지속되고, 그 여파가 여타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이 같은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팔을 걷었다.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각 부처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여타 분야로 확산할 가능성을 점검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 금융부문에서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은행권 등이 이달 초부터 잇달아 실무회의를 열고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를 점검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정책적으로 통상정책 관련 불확실성을 자체적으로 해소하고 통상 여건에 민감함 품목들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 우리나라 경제의 대외 취약성을 점진적으로 경감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진현진기자 2jinhj@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