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남 칼럼] 용광로 불씨 꺼지면 제조업 심장도 멈춘다

강주남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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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남 칼럼] 용광로 불씨 꺼지면 제조업 심장도 멈춘다
강주남 산업부장
환경단체가 제철소를 고발했다. 대기오염물질을 불법으로 배출해 대기환경보전법을 위반했단다. 그러지 않아도 대기업이라 곱지 않게 보이는데, 오염물질까지 배출한다니 화가 났을 것이다. 광화문 광장에 나와 시위도 했다. 그러자 지방자치단체가 나섰다. 법령에 근거해 '조업정지 10일' 처분을 내렸다. 이에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철강업계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집행 정지'도 신청했다.

법을 먼저 살펴보자. 이 법의 31조는 사업자가 배출시설과 방지시설을 운영할 때 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규정하고 있다. 31조 1항엔 '배출시설을 가동할 때에 방지시설을 가동하지 아니하거나 오염도를 낮추기 위해 배출시설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에 공기를 섞어 배출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적혀 있다. 다만, 화재나 폭발 등의 사고를 예방할 필요가 있어 환경부장관 또는 시·도지사가 인정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기는 했다.

사고를 예방할 필요가 있어 당국이 인정한 경우가 아닌데도 현대제철은 방지시설 없이 오염물질을 배출했다는 것이 충남도의 판단이다. "경제적 비용 문제 때문에 그간 제재를 미약하게 해왔고 이 때문에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다"는 비장한 설명까지 충남도지사는 덧붙였다. 전남도와 경북도도 포스코 광양·포항제철소에 대해 똑같은 결정을 내렸다.

산업 현장의 현실은 어떨까. 1500℃ 쇳물이 담겨있는 용광로는 안전성 확보를 위해 1년에 6~8회 정기적인 정비를 한다. 정비 과정에서 용광로 내부에 수증기를 넣는데, 이를 안전하게 빼내기 위해 용광로 위에 있는 안전밸브를 연다. 용광로 폭발을 막고 근로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게 철강업계의 주장이다. 전 세계 제철소가 지난 100년 동안 적용하고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현재 기술로는 안전밸브를 사용하지 않고 고로를 가동할 방법이 없단다. "배출되는 소량의 고로 잔여가스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특별한 해결방안이 없으며, 회원 철강회사 어디도 배출량을 줄이거나 없애기 위해서 특정한 작업이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는 보고는 없다"는 게 세계철강협회 측의 설명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안전밸브 개방 후 나오는 고로 잔여가스의 유해성 여부다. 잔여가스 성분은 현재 국립환경과학원 주관으로 측정이 진행 중이다. 그 양은 2000cc 자동차가 하루 8시간 운행 시 10여 일간 배출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올 초 포항제철소에서 잔여가스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제철소 인근 지역과 멀리 떨어진 곳(경주시 성건동)에 설치된 국가 대기환경측정망 데이터를 비교했다고 한다. 미세먼지(PM10), 일산화탄소(CO), 황산화물(SO2), 질산화물(NO2) 등 주요 항목이 용광로의 정상 가동 시와 잔여가스가 나올 때 대기질 농도에 차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도 지자체가 성급하게 조업중단 명령을 내린 건 쉬 납득하기 어렵다. 현재 진행 중인 국립환경과학원 측정 결과가 나온 뒤 지자체가 행정처분을 내려도 늦지 않다. 철강업계에게 조업중단은 생각처럼 단순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용광로가 일주일 이상 멈춰서 있으면 안에 있는 쇳물이 굳어 용광로 본체가 깨질 수 있다. 깨진 것을 복구하려면 3~6개월이 걸린다. 현재 기술로는 대안이 없으니 이대로라면 다시 가동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경제적 손실도 엄청나다. 현재 열연 제품 가격(톤당 72만∼74만원)으로 볼 때 3개월간 조업을 못 하면 약 8000억원, 최장 24개월이면 8조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환경단체의 진정성에도 의문이 든다. 올 봄 미세먼지 대란 때 환경단체들의 대응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지난 정권 때 였다면 피켓을 든 환경단체 회원들이 광화문 광장을 뒤덮었겠지만, 이번엔 너무나 조용히, 마치 아무일도 없다는 듯 그냥 넘어갔다. 전 국민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미세먼지 대란에도 그 흔한 성명 한줄 발표하지 않았던 그들이 아닌가. 이런 환경단체가 아직 유해성 여부가 검증되지도 않은 제철소 배출가스엔 득달같이 달려드는 까닭은 무엇인가.

고로는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설비다. 이렇게 만든 쇳물은 각종 철강재를 만드는 데 쓰인다. 철은 조선·자동차·건설 등 전통 제조업을 돌리는 '산업의 쌀'이다. 미중 무역전쟁 격화와 노동생산성 악화로 우리 제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악화일로다. 이런 상황에서 기반 산업인 철강마저 흔들리면 우리 제조업이 설 자리는 없어진다. 정부가 시급히 절충안과 해법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용광로의 불씨가 꺼지면, 우리 제조업의 심장도 멈춘다.

강주남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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