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함 칼럼] 막말은 下手다

양승함 前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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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3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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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함 칼럼] 막말은 下手다
양승함 前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막말은 일반적으로 상스럽고 교양 없는 몰상식한 말을 의미한다. 대체로 이런 막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막말을 하는지 잘 의식하지 못한다. 본인 스스로가 늘상 그러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막말이 더 자연스럽다. 거칠고 사실과 다른 말을 마구 내뱉으면서도 별 다른 부끄러움이 없다.

한국 정치에 막말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의 막말이 일반적 막말과 다른 점은 상당히 의도적이라는 것과 집단적 히스테리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 일탈현상이 아닌 집단적·조직적 일탈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막말정치의 어두운 면을 심각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 정당이 막말을 하면 내년 총선 공천에서 배제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엄포를 놓았을 정도다. 이러한 막말현상은 선거에서 한 정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수준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좌우하는 수준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정치적 막말에 대한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에 183만 명이 서명했고 맞불 청원인 더불어민주당 해산에는 34만 명이 서명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명인 수가 아니라 국민이 정치적 막말에 대한 불만과 국회 공전에 대한 분노를 여실히 표출했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불난데 부채질하는 격으로 내년 선거에서의 심판을 대안으로 제시하여 막말갈등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당의 해산 여건은 여론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주지시켰어야 했다.

막말정치는 폭력정치 다음으로 하수에 속하는 정치다. 막말정치는 정치적 적대감을 표출하는 한 수단으로, 대체로 폭력을 수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즉 정치적 갈등이 긴장, 논쟁, 경쟁, 분쟁의 단계를 넘어 적대감을 드러내며 침략성, 폭력성, 전쟁의 단계로 진행되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막말로 적개심을 표현할 단계에 들어서면 이미 상당히 감정적으로 흥분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진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면서 집단적으로 감정적 배설을 하면 그만이다. 유사한 막말을 하는 사람들 끼리 말초적 쾌감을 가학적으로 공유한다. 결국 사실이 아닌 막말을 반복적으로 하다보면 그것이 사실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게 되는 병적 흥분상태에 이른다.

정치갈등이 분쟁단계에 들어서면 정치적 대화, 설득, 협상을 통해 그 갈등을 해결하는 사회가 민주적 다원사회이다. 막말로 무책임한 적대감에 빠지기 전에 합리적이고 이성적 차원에서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이다. 민주주의가 심화되면 될수록 민주주의의 불문율인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력을 발휘하게 된다. 정치적 반대세력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폭력을 불용하는 사회가 바로 민주주의가 성숙한 사회인 것이다. 사실과 진실에 기반한 대안적 비판과 논쟁을 전개하고 막말이 뿌리 내리지 못하게 민주적 규범이 진작되는 사회이다.

저명한 정치학자인 사뮤엘 헌팅톤은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두 번 이상의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민주주의가 공고화되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퇴보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한국은 1987년 이후 세 번의 정권교체가 이뤄졌으니 이제는 민주주의 심화 단계에 들어서야 할 때이다. 첫 정권교체는 김대중 정부였고 두 번째는 이명박 정부였으며 세번째가 문재인 정부다. 그러나 한국정치는 촛불시위에서 보여준 세계정치의 기념비적·평화적 민주적 시민저항 의식이 미처 뿌리 내리기도 전에 막말정치의 덫에 걸려 민주주의 퇴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막말정치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막말하는 사람에게 있다. 그러나 그러한 막말을 횡행하게 하는 상대에게도 이차적 책임은 있다. 막말이 나왔을 때 그 막말이 다시 나오지 못하게끔 유머, 위트, 해학 등으로 막말의 악순환을 끊어 버리는 사례가 동서양의 정치사에서 전래되고 있다. 그와 같은 지혜와 리더십이 아쉽다. 그러한 여유와 능력이 아니더라도 권력을 나누어 주는 협치의 정신을 발휘하여 막말의 근원을 아예 차단할 수도 있는 것이다. 상대방을 지배하거나 배제하기보다 협력과 관용의 정치를 하는 것이 권력경쟁에 있어서의 상수(上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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