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단일 시장화되고 공급망이 거미줄같이 엮이면서 언제 어디서 기회와 리스크가 생길지 예측하기 힘든 가운데 기업들이 구매혁신을 통한 경쟁력 강화와 리스크 대응에 나섰다. 구매조직의 역할은 구매·계약·입찰 등 일반 행정처리에서 벗어나 경쟁력 높은 기술기업 발굴, 최적 거래기업 추천, 가격요동이 심한 자재 사전확보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엠로가 11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개최한 '데이터 기반 혁신' 세미나에서 최정욱 국민대 교수(경영대학)는 "국내외 기업들이 자동화와 빅데이터 기반 통찰력 확보라는 두가지 키워드로 디지털 구매혁신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밝혔다.
엠로는 구매솔루션 영역에 특화해 대부분의 국내 대기업을 고객으로 보유한 국내 강소기업이다. 삼성전자·LG전자·SK하이닉스·포스코·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이 이 회사 디지털구매 솔루션을 쓰고 있다. 엠로가 매년 개최하는 이 행사는 디지털 구매 관련 국내 최대 규모 세미나로, 이날 약 1200명이 참가했다.
최정욱 교수는 "급변하는 시대에 기업 구매조직은 단순 반복업무는 자동화 기술로 처리하고, 경쟁력 있는 공급사 발굴, 구매 리스크 대응 등 고부가 업무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원가절감, 자재조달, 거래기업 관리는 기업들의 영원한 현안 만큼 관련 솔루션이 갈수록 다양화하고 있고, 신기술을 이용해 구매업무의 개념을 바꾸는 기업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구매조직이 현업조직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가장 경쟁력 높은 공급사를 파악해 독점거래 계약을 맺거나, 가격 등락폭이 큰 자재를 분석해 미리 확보하는 등 기업 경쟁력을 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취약한 공급사를 파악해서 거래를 줄이고, 개발조직에서 기술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 외부 기업의 기술을 도입해 해결하는 것도 혁신적 구매조직이 해야 할 일로 꼽힌다.
실제로 독일 BMW는 소셜미디어·블로그 모니터링, 키워드 검색 등을 통해 공급업체 파산·인수합병, 거래기업 보안 취약성, 품질 이슈, IP 탈취 등 각종 공급망 관련 리스크를 사전 감지해 대응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구매담당자가 퇴근하면서 시스템을 실행하면 전세계 신문, 잡지, 블로그 등의 수천만건 데이터를 분석해 다음날 구매관련 대응과 의사결정을 하도록 돕는 방식이다. 최근 국내 한 대기업은 구매조직 내에 정보분석팀을 만들어 자사와 관계된 공급시장에서 생성되는 모든 정보를 분석해 대응하고 거래기업들에 제공하기 시작했다. 하룻밤 사이, 시시각각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 바로 회사의 사업 현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IT서비스 기업 포스코ICT는 회사 전체 구매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스마트 대시보드를 도입했다. IT시스템 개발·구축이 주업인 이 회사는 매년 수천개 기업과 구매계약을 맺고 일회성 거래도 많다 보니 공급사 이슈가 바로 프로젝트 성패로 이어진다. 회사는 프로젝트 수익성을 높이고 위험을 낮추기 위해 수주부터 조달·검수·대금지급·재고관리까지 전사 업무에 대한 모니터링 체계를 도입했다.
또 대시보드에서 회사 전체 수주·매출·영업이익·비용·구매실적 수치를 실시간 확인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특히 프로젝트 리스크 징후와 하도급 이상징후도 표시되도록 해 문제 시 즉각 대응하고 있다. 특히 일회성 거래가 아닌 모든 공급사에 대해 신용등급, 현금흐름등급, 거래규모, 거래의존도 등을 실시간 관리한다. 회사는 다음 단계로 사업별로 최적의 공급사를 추천하는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다.
GS칼텍스는 회사의 취급품목에 대해 머신러닝 기반 기준정보 품질관리체계를 도입할 예정이고 검색엔진을 활용해 구매업무의 속도와 정확도를 높였다. 현대오토에버는 검색엔진과 머신러닝을 적용한 구매 이력정보를 활용해 기술평가 이상징후에 대응하고 있다.
최정욱 교수는 "기업들은 디지털 구매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구축해 기준정보 체계, 비용분석, 계약관리, 리스크 관리, 공급자 관계관리, 공급자 포털을 아우르는 플랫폼 밑그림을 그린 후 우선순위와 비용대비 효과를 판단해 작은 규모부터 속도감 있게 진행하는 애자일 전략을 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엠로가 11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최정욱 국민대 교수 디지털 구매 발전현황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엠로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