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길어도 좋은 임금님 귀

장영철 숭실대 초빙교수·前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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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09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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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길어도 좋은 임금님 귀
장영철 숭실대 초빙교수·前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 사장
한나라의 최고권력자인 왕의 신상 명세나 일정 등은 예나 지금이나 특급비밀이었던 것 같다. 절대 독재국가일수록 더 심한 데, 북한의 김정은이 미국 트럼프와의 회담시 싱가포르, 하노이에 갔을 때 머리카락이나 심지어 담배꽁초 등 신체와 관련된 흔적을 모조리 수거해 갔다는 보도를 보니 그런 것 같고, 고대 그리스, 페르시아와 신라에서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설화를 보아도 그런 것 같다.

고대 설화에서는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특급비밀을 알게 된 이발사나 모자 만드는 사람의 처지를 묘사하고 있다. 비밀을 유지하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이들이 참다가 병이 도져 죽게 될 것 같자, 혼자 대나무 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고, 이후 바람만 불면 이 소리가 울려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절대권력 시대에 왕은 신의 반열에 있다. 신과 같은 존재인 왕이 멍청이로 상징되는 하찮은 동물에 불과한 당나귀의 귀를 가졌다는 뉴스는 백성들의 왕에 대한 시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아무리 절대권력이라고 하더라도 요즈음 권력자들이 흔히 쓰는 '가짜뉴스'라는 용어로 엄연한 사실을 영구히 막을 수 없다는 교훈을 준다. 더구나, 1인미디어가 발달된 현대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국민과 함께 해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설화는 후반부에 반전이 일어난다. 우리나라의 삼국유사에서는 신라 말기 48대 경문왕이 왕위에 오른 이후 이러한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대나무 숲에서 이 비밀이 폭로된 후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백성들에게 귀중한 한약재로도 쓰이는 산수유를 심자, 바람이 불 때 나오는 소리가 "우리 임금 귀는 길다"로 바뀌었다고 한다. 왕을 비하하는 '당나귀 귀'가 빠진 것이다. 다른 나라의 설화에서도 '왕이 커진 귀로 백성의 소리를 잘 들으라는 소리로 깨닫고 약점으로 생각했던 자신의 길어진 귀를 편히 내놓으면서 백성의 소리를 들어 훗날 성군의 소리를 들었다'(나무위키)고 한다. 절대권력자인 왕이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백성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최근, 대통령은 취임2주년 기념 대담에서 우리 경제가 성공하였다고 하면서 이른바 '족보있는 경제정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경제는 추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성적표가 대담이 끝난지 얼마되지도 않아 드러났다. 한국은행은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10년만에 마이너스로 추락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임에도 수출이 5개월째 감소되면서 올해 4월에는 경상수지가 5년만에 적자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정부가 역대 보기 드물게 세금을 수십조나 기세 좋게 썼음에도 실업률과 실업자수는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의 주체인 기업을 억누르고 노조 편향적인 경제정책을 추진한 결과이다.

사회적 약자 계층의 일자리가 우선적으로 사라지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저소득층이 직격탄을 심하게 맞으면서 소득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최저임금이나 주52시간 등의 정책으로 인하여 발생된 민간기업의 임금 부족분을 국민이 피땀 흘려 낸 세금에서 보전해주고 있다.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기업들이 생존을 위하여 기업을 재편하려는 노력을 노조가 불법적으로 방해하는 데도 정부는 모른 척하는 일이 일상화했다. 기업하기가 어려워지자 많은 기업들이 폐업이나 해외로 나가면서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어 일자리정부를 표방한 현 정부는 불과 2년만에 '일자리를 줄이는 정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우리 경제가 성공했다고 규정한다면 이미 경제가 망가진 비밀을 아는 국민들은 대나무 숲에라도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호소하여야 할 판이다. 그런데, 이 비밀을 아는 사람들이 벌써 대나무 숲에 가서 이야기 했는 지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경제가 망가지고 있다'는 소리가 우리 사회에 울려 퍼지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굳이 대나무 숲까지 가서 바람이 불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이 소리를 듣게되는 실정이다.

현 정부는 우리가 지난 70여년동안 쌓아온 경제적 성과를 불과 2년 만에 망가뜨리는 데 성공했다. 국민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나라가 경제 뿐만 아니라 외교안보면에서도 생존하기가 쉽지 않다는 비밀을 이미 알고 있다. 신라 경문왕이 대나무 숲을 산수유 숲으로 바꾸는 등 진정으로 모든 국민을 위하는 정책을 취하자 멍청이를 상징하는 '당나귀'가 빠진 것을 기억하자. 자기편 만이 아닌 모든 백성의 소리를 잘 들으려면 당나귀의 귀가 아니라 길고 긴 임금님 귀가 좋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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