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여론조사 오남용 度 넘었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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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2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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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여론조사 오남용 度 넘었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여론조사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분야다. 절대 권력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소수 통치자의 판단이 지배하는 권위주의 혹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다수 국민들의 의견은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 또한 여론조사는 자본주의 체제가 작동하는 토대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의 태도나 의식 같은 무형의 행위들을 숫자라는 형태로 치환해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유형의 상품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다수 자본주의 국가에서 여론조사는 대단히 중요한 기구이자 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어쩌면 민주 정치는 여론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고 여론조사를 먹고 산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론조사 결과는 모든 기업이나 상품의 경제적 가치를 결정짓는 절대적 잣대가 되고 있다. 예를 들면, 여론조사의 일종이라 할 수 있는 TV시청률은 특정 프로그램의 광고매체로서의 가치를 결정하고 그것은 결국 방송사의 경제적 수입과 직결되어 있다. 이 때문에 시청률조사는 시청자의 시청행위를 상품으로 만들어 광고주에게 판매한다는 의미에서 '수용자상품'(audience commodity)이라 지칭되기도 한다.

어쩌면 여론조사는 현대판 도량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물인터넷에 기반을 둔 빅 데이터나 인공지능이 이를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 4차 산업혁명 기술들 역시 이용자와 데이터 접속의 편향성 때문에 완전히 중립적이고 객관적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드루킹 사건처럼 클릭 수나 댓글 조작을 통한 사실 왜곡이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는 과학적 표집, 분석, 추론을 통한 여론조사가 핵심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론조사의 정확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지만 표본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 특성상 오류 가능성은 얼마든지 내재될 수밖에 없다. 다만 체계적인 절차나 방법을 통해 이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정치적·경제적 이해득실 때문에 여론조사결과는 항상 오·남용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최근 한국사회는 여론조사의 오용과 남용이라는 함정에 빠져있는 것 같다. 마치 뉴스를 보고 있으면 모든 분야에서 여론조사 과잉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대한민국 뉴스와 평론은 여론조사결과 없으면 보도할 것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물론 최근 들어 통계수치나 과학적 자료들에 근거해 보도하는 데이터저널리즘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보도되고 있는 많은 뉴스거리들 중에는 여론조사까지 해야 할 쟁점인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 적지 않다. 어찌 보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든 아니든 모든 것을 해결해달라고 올라오는 청와대 청원게시판 같은 모습이다. 또 보도된 여론조사결과들을 보면 조사주체가 쟁점과 관련된 이해당사자인 것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조사를 주관한 언론사나 조사기관들 중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적 성향이 인식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조사주체가 원하는 응답이 늘어나는 '맞춤형 응답'(demanding characteristics)현상이 개입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장관임용 관련 여론조사나 정당지지율 조사결과들을 놓고 논쟁이 벌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조사 공정성이나 결과 정확성을 놓고 이해당사자들간에 의견이 충돌할 수는 있다. 하지만 조사결과를 가지고 자기들의 정당성을 부각시키고 세력을 과시하려한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언론사들이 여론조사결과를 마치 '무 자르듯이 찬·반, 지지·반대'처럼 이분법적 갈등구도로 보도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가뜩이나 최근 우리사회는 극단적인 정치적 갈등상태에 빠져있다. 모든 사회 현상을 정치적 지지성향-정치적 이념 때문인지 특정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 지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에 따라 무비판적으로 해석하고 편을 가르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인터넷·SNS로 인해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혹시 언론사들이 연일 쏟아내고 있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우리사회의 갈등구조를 증폭시키는 소재로 오용·남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농도가 더해가고 있는 여·야간 막말 정치가 이러한 정당 지지율 여론조사 보도와 결코 무관해 보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여론조사가 다양성의 '차이'가 아니라 다수에 의한 '차별'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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