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무조건 퍼주기 아닌 자본주의 가르쳐 시장경제로 유도해야" [박종규 바른경제동인회 회장에게 고견을 듣는다]

진영·계층·노사 등 대립 극심해, 인격적 평등 유지·자유와 자율 보장된 융합 생각할 때
대기업 위주 남북경협은 부작용 커… 중소기업 중심에 사업으로 새롭게 접근해야 효과
노동자들이 주장하기 전에 경영자가 먼저 '같이 살자' 뜻 모아야 존경받는 기업으로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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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에 무조건 퍼주기 아닌 자본주의 가르쳐 시장경제로 유도해야" [박종규 바른경제동인회 회장에게 고견을 듣는다]
박종규 바른경제동인회 회장·KSS해운 고문

박동욱기자 fufus@




[]에게 고견을 듣는다

박종규 바른경제동인회 회장·KSS해운 고문




박종규 회장은 우리 사회의 진영간, 계층간, 노사간 대립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다. 박 회장은 "대립이 아니고 융합해야 한다"며 "그래서 이익공유제를 택한 것이고 그를 통해 구성원들이 인격적 평등을 유지하고 자유와 자율이 보장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나를 '사람 좋은 사람, 윤리적인 사람'이라고 하는데, 합리적으로 기업을 이끌려면 그 방법이 가장 현명했기 때문"이라며 기업경영을 윤리적 도덕적으로 접근하는 시각을 차단했다.


대담 = 이규화 논설실장


-1993년 바른경제동인회를 결성하셨는데요.

"1980년대 말부터 우리 사회에 노동운동이 심하게 일어났잖아요. 혼란이 보통이 아니었어요. 사업가들이 그런 경험을 해본 적도 없고, 노동자들과 타협을 해본 적도 없었어요. 자기들의 디그니티, 권위주의를 줄곧 유지해왔단 말이예요. 사업가들은 사업 못하겠다고 하고 노동자들은 점점 강해지고 이런 상태에서는 산업 자체가 깨질 거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일본도 우리와 똑같은 과정을 겪었잖아요. 어떻게 극복했는가 알고 싶어 일본에 갔어요. 도서관을 다 뒤졌더니 '경제동우회'라는 역사책이 나오더라고요. 거기에 노동자들과 파트너십을 맺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거예요. 공감이 갔습니다. 이 사람들이 일본을 월급쟁이 세상과 전문경영인체제로 만드는 데 기여를 많이 했어요. 그러니까 일본은 오너기업이 별로 없어요. 100대 기업 중에 8개인가 6개인가 그래요. 거의 다 전문경영인체제로 보면 돼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거꾸로예요. 4개만 제외하고 포스코, KT, KT&G, 유한양행 뿐이에요. 그래서 일본처럼 우리도 파트너십으로 가야한다는 필요성에서 경제동우회와 비슷한 바른경제동인회를 만들었어요."

-우리나라는 대부분 오너십 경영이고 경영을 세습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전문경영인체제를 안착시키고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데에 시기하는 시각이 없지 않았을 텐데요.

"일본의 경우를 토대로 뜻 맞는 사업자들을 모았어요.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안 되지 않느냐, 노동자들이 주장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반성하고 투명하게 경영을 하자' 이렇게 뜻을 모았어요. '투명하면 노동조합이 힘 못쓴다.' 그런데 호응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경실련의 서경석 씨한테 얘기를 했더니 자기들 후원해주는 기업들은 아마 호응할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서경석 씨가 뜻 맞는 기업인들을 모아줬어요. 그래서 처음에 30명으로 발기인이 되어 출발을 했어요. 초대 회장을 조순 박사가 하고 내가 이사장을 했지. 지금은 회원이 180여명 될 겁니다. 거기에 또 살림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KSS해운 총주식의 1.7%의 주식을 기부했어요. 한 40만주 될 겁니다."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도 지내셨는데, 어떻게 맡게 되셨나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민간 위원장을 했어요. 당시 총리가 고건 씨(박 회장의 서울대 정치학과 1년 후배)였는데, 나를 천거했던 가봐요. 나는 행정을 모르잖아요. 하고 싶지도 않았고. 처음엔 거절했지요. 또 내 친구들, 내 나이 때는 전부 우파야, 전부 태극기 판이고. 그런데 그 당시에 노무현 대통령이었는데, 임명장을 받으러 가면 신문과 TV방송에 나올 거란 말이예요. 그러면 말이지 '저 놈 팔려갔다'고 얼마나 욕을 하겠어. '감투에 미쳤나?' 이렇게 볼 거란 생각을 하니까 안 되겠더라고. 안 하겠다고 거절을 했지요. 그런데 그 와중에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결의가 돼니까 고건 씨가 대통령 대행이 됐어요. 그래서 받았어요. 고건 총리가 대행하면서 인사를 딱 하나 했는데, 저를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으로 앉힌 겁니다. 나중에 고건 씨한테 왜 나를 지목했냐고 물어봤더니 '규제를 받던 분이 한 번 해보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원칙주의자이였던 회장님이 위원장이었으니 위원장 역할을 확실히 하셨겠습니다.

"당시 규제개혁위언회 활동이 매스컴에 잘 안 탔어요. 어느 정도 중요한지를 기자들이 잘 몰랐어요. 중요한 안건이 막 넘어오는데 관심이 별로 없더라고요. 위원장 하면서 정부와 싸움 많이 했어요. 새로운 안을 만들어서 규제를 하려고 달려드는데 정치적인 것이 많았어요. 내가 그걸 전부 거절했지. 못한다. 내 모가지 자르고 해라. 막 이런 식으로 했어요."

-사퇴 압력이 있지 않았나요.

"한 번은 소문이 들려요. 당신 그만두게 하고 다른 사람을 앉히려고 한다는 거예요. 나는 '그만두라면 얼씨구나 좋다 그만두지 뭐,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응수하며 단,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어요. 기자회견을 할 거다. 내가 왜 그만두는지 설명을 하고 그만두겠다 했지요. 그 바람에 모가지를 못 자른 것 같아요. 청와대 비서실에서 젊은 사람들이 말이야, 내가 말을 안 듣는다고 엄청 욕했어요. 중요한 것들이 참 많았어요. 그 대표적인 것이 신문법이에요."

-당시 신문법 대치가 극렬했었어요.

"신문법이 다른 게 아니고 편집위원회법이에요. 편집위원회를 만들고 노사 동수로 하라는 거예요. 편집권을 사주에서 뺏는 겁니다. 결국 노조에 의해서 움직이는 신문을 만들겠다는 의도지요. 좌파적 생각이죠. 거기다가 당시 H신문이 경영이 어려웠는데, 이 신문사를 도와주는 보조정책을 쓸 수 있는 법을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당시 대통령이 모범을 보인다고 1000만원을 투자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게 신호탄이었어요. 그런 다음 보조정책을 쓰겠다고 한 거지요. 그러니까 낚시밥을 먼저 던져놓았던 거예요. 그런데 그 당시 야당이 물러가지고, 신문법을 어떻게 했느냐 하면 노사 동수로 편집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을 대통령 시행령으로 한다고 후퇴를 했어요. 그리고 통과를 시켜버렸어요. 그러니까 그것이 대통령 시행령으로 다 나한테 떨어진 거야. 그래 내가 '국회의원들도 못 하는 걸 갖다가 나한테 넘겨?'라면서 '규제위원들이 무슨 국회의원인줄 아나!'고 못 한다고 했어요. 국회의원 세비를 갖다 주면서 하라고 하면 모를까.(웃음) 법을 하위법에 넘겨서 규정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했어요. 끝까지 노했어요. 끝내 통과시키지 않으니까 저쪽에서는 죽을 맛이었지. H신문은 망해 가는데, 그래서 내 그랬어요. 'H신문 망하게 만들래 이걸 철회할래.' 나 있는 한 이건 절대 안 된다고 버텼지요. 결국 청와대가 신문법을 철회하고 신문사 지원하는 법은 통과시켰어요. 내가 이겼지. 그 때 신문법 통과됐으면 지금 어떻게 됐겠어요?"

-95년부터 중국 길림성과 연결하는 중간매개지로 북한 나진항을 거치는 해상 운송로를 10여년 운영하신 걸로 아는데요, 책에서도 말씀하셨지만, 경험에 비추어 북한과의 경협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계십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개방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경협이 필요하다고 보고 추진하려고 하는데, 성과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경협 자체는 나쁘다고 보지 않아요. 그러나 하는 방법이 틀렸어.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동해선 철도연결 등등이 대기업 위주예요. 대기업 위주로 하면 안 돼요, 저쪽은 좋아해. 김정은으로서는 먹을 것이 크단 말이예요. 그러면 저쪽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배우지 않아요. 배울 기회가 없어. 돈만 생기기만 하면 되는 거야. 큰 게 오는데, 작은 거 오는 것은 시시한 거예요. 오히려 중소기업들 작은 것들을 보내가지고 거기서 공장을 만드는 거예요. 개성공단도 사실은 만들 필요가 없었어요. 북쪽 각 지역에 투자를 같이 해서 기업경영을 어떻게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줬어야 해요. 개혁개방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게 했어야 해요. 중국처럼요. 작은 것부터 배우도록 해서 시장경제로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거예요. 처음부터 광을 내려고 하다 보니 팍팍 주는 거예요. 그러니 저쪽에서는 작은 것들은 성에 안 차는 겁니다. 내 경험으로 봐서 지금 방식은 아니라고 봅니다. 무엇이 잘못돼 가고 있는지 보여요."

-후진 기업가들과 정치권에 당부하실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핵심은 모든 일을 하는데 있어서 대립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종업원과 경영인 대립, 또 종업원끼리 대립이 많아요. 그러니까 종업원들이 자기 회사라고 생각을 안해요. 애사심이라는 게 없어. 일본은 이런 게 엄청나게 강해요. 일본을 이기려면 자기 회사가 돼야 해요. 소유권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그렇게 돼야 해요. 그러려면 융합을 해야 합니다. 대립이 아니고 융합이라고요. 그 융합하는 방법으로 저는 이익공유제를 택한 거예요. 월급 보너스 조금 더 준다는 문제가 아니예요. 그것으로 인해 사람이 인격적 평등을 유지하고 자유가 보장되고 자율이 생기는 겁니다. 그것을 하기 위한 방법이 이익공유제고 전문경영인제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람 좋은 사람, 윤리적인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건 내 나름의 합리화정책입니다. 합리적으로 기업을 끌고 가려면 어떤 정책이 올바른가 하는 문제입니다. 제대로 된 기업을 만드는 게, 300년 이상 갈 기업을 만드는 게 사회와 나라에 기여하는 거라고 봅니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이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방법론으로 접근해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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