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공익법인은 설립자 아닌 사회의 것이다

권오용 (재)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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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1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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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공익법인은 설립자 아닌 사회의 것이다
권오용 (재)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우리나라는 공시연도 2018년 기준으로 9216개의 의무공시 공익법인이 있다. 이들이 한 해에 지출하는 돈은 약 155조1500억원에 이른다. 이들은 사회복지, 의료, 학술장학, 문화 등 다양한 공익활동을 하고 있으며, 국가도 세금을 면제해주는 등 이들의 활동을 장려하고 있다.하지만 공익법인과 관련하여 불거지고 있는 여러 사례들을 보면 공익법인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데 있어서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최근 한 국회의원의 문화재단 설립과 운영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참이다. 해당 의원은 공익법인을 설립하면서 부동산 투기 의혹과 이사회 구성 등에 관한 논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해당 의원은 인터뷰에서 "재단에서 구입을 한 것입니다. 재단은 공공재입니다. 팔 수가 없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투기 의혹이 있다면 국가에 기부하겠다"고 했다.

해당 의원의 말은 개인이 아닌 공익법인이 부동산을 구입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보인다. 박물관 설립을 위해 매입한 땅은 도시 재생과 전통문화 진흥을 위한 선의였기 때문에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공익법인의 자산을 이사회의 결의 여부도 밝히지 않은 채 설립자인 자신이 국가에 기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재단의 자산을 국가에 기부하겠다는 의원의 말은 공익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공익법인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공익법인은 내가 출연금을 내고 설립을 했어도 내 손을 떠난 사회의 것이다. 그러나 해당 의원은 '내가 설립했으니 내 것'이라는 시각이다. 게다가 자신의 사재는 기부금품 모집 허가를 받고 출연했는지, 법인의 이사회는 어떻게 구성되고, 이사회에서 어떤 내용을 논의했는지는 깜깜이다.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큰 기업은 대부분 공익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기업집단 소속인 공익법인은 165개다. 이들의 자산은 약 20조원으로 전체 공익법인의 약 8.4%를 차지하고 있다.

기업이 설립한 공익법인은 사회공헌 활동을 장려하는 취지에서 특수관계 법인의 최대 5% 지분까지 출연에 따른 상속·증여세를 면제해 주는 혜택을 받는다. 하지만 일부 대기업과 자산가들은 이런 제도를 악용해 계열사나 자산을 특수관계인들이 지배하는 공익법인에 넘겨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모 기업에서 설립한 공익재단의 경우 5376억 원이라는 거액의 계열사 주식을 갖고 있지만, 주식 보유비율이 5% 미만이어서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또 다른 기업의 공익재단은 계열사 3곳으로부터 기념관 건립을 명목으로 수백 억원의 출연금을 현금으로 받았지만 재단은 이 돈을 기념관 건립이 아닌 창업주의 생가 주변 땅을 매입하는데 사용했다. 세금혜택을 받으면서 공익이 아니라 사익을 추구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직 대통령들도 자신의 자산을 공익법인에 기부해 좋은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가장 모범적이어야 할 이 법인들도 투명성 측면에서는 문제가 적지 않다.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외부회계감사를 하지 않거나, 기부금을 어디에 썼는지 공개하지 않은 경우가 그 단적인 예다.

공익법인은 사유재산을 출연해 설립할 수 있지만 세금 혜택을 받아 공적인 목적을 수행하기 때문에 공공의 것이다. 하지만 아직 몇몇 공익법인 설립자들은 내 돈 내고 설립한 공익법인은 내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공익법인은 출연과 동시에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공의 자산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또한 설립과 운영 시 법을 의무적으로 준수해야 하며, 지출의 투명성은 검증되어야 마땅하다.

공익법인의 자산이 공공의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하려면 지배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 기업소속 공익법인뿐만 아니라 모든 공익법인들의 지배구조 즉 이사회가 내·외부 압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공익법인 설립 의도에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상적인 공익법인 이사회는 경영진에게 사업의 방향과 전략을 인도하는 최고 의사결정자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이사회를 누구로 구성해야 하며, 의무와 권한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관해 규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에 신탁이사회를 구성하는 것을 제안한다. 공익법인은 설립자가 아니라 공익법인 설립의 뜻을 잘 구현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이사회가 구성돼야 한다. 신탁이사회를 통해 편법승계 같은 불필요한 논란을 해소할 수 있다. 영국 정부는 공익법인 기준에 관한 지침서를 제공해 공익법인들이 어떻게 이사회를 구성하고 운영해야 하는지 도움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공익법인을 위한 이러한 가이드라인이 제공되는 것이 필요하다. 지배구조에 대한 의심이 해소된다면 공익법인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규제는 대폭 완화해 그 활동을 확산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도의 개선과 인식의 변화를 통해 어려운 환경에서 성실하게 공익활동에 종사하는 대다수의 공익법인들이 사회공헌활동의 주역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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