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평화경제`는 본말전도의 논리다

강원식 前 駐벨라루스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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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14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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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평화경제`는 본말전도의 논리다
강원식 前 駐벨라루스 대사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가 경제다'는 논리를 강조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미 강원도는 금강산관광으로 평화가 경제임을 체험했습니다."(2019.4.26. 평화경제 강원비전전략보고회)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파주 일대의 상전벽해와 같은 눈부신 발전도 남북이 평화로웠을 때 이뤄졌습니다. 평화가 경제입니다"라고 밝혔다.

'평화경제론'은 김대중 정부때 햇볕정책의 이론 근거로 제시되었는데, 적어도 당시에는 '경제가 평화'이기에 경제의존도를 키우면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논리 구조를 갖고 있었다. 이는 자본주의 경제학의 관점이다. 칸트는 공화정-내정불간섭-국제연방법 등 정치적 조건과 상호의존의 경제적 조건에 의해 영구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은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근거하여 행동하는데, 어떤 사람은 좋고 싫음의 가치를 따르고 어떤 사람은 옳고 그름의 신념을 중시한다.

국가정책도 마찬가지다. 국가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신념이 공유되면 국제관계도 안정되고 평화가 유지된다. 이때 국가간 가치는 경제교류·협력을 통한 실리 등이며, 국가간 신념은 같은 체제와 이념 등이 될 수 있다. 경제적 이익에 주목한 것이 아담 스미스와 존 스튜어트 밀 등 고전경제학파의 '자본(시장)평화론' 또는 '자유무역평화론'이다.

자유무역이 국제적인 노동 분업을 가져옴으로써 국가간 상호의존성을 증진시켜 전쟁 가능성을 감소시킨다고 본 것이다. 한편 국가간 신념을 강조한 것은 '민주평화론'이다. 민주주의 국가간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으로 민주주의가 확산되면 세계평화가 온다는 신보수주의의 논리이다.

그러나 남북한간에는 상호신뢰가 쌓일 만한 경제적 공유가치가 없었다. 금강산관광은 피살사건으로 끝났고 개성공단은 재산몰수로 이어졌다. 서로의 이념과 체제도 달라 같은 언어와 민족이라는 동질성이 아니라면 공유할 수 있는 신념도 없다. 이처럼 다르기에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이래로 교류와 협력을 통해 서서히 상호신뢰를 쌓아 평화와 통일에 접근하자는 것이 기본 노선으로 되어 왔다.

지금의 평화경제론은 처음부터 '선평화 후경제'의 논리이다. 예컨대 김연철 통일부장관은 2006년 교수 시절 집필한 논문 '한반도 평화경제론'에서 '평화가 한국경제의 질적 도약'이라는 논지를 주장했다. 더 나아가 2019년 1월 신문 칼럼 '평화는 땅이고 경제는 꽃이다'에서는 '땅이 없으면 꽃이 필 수 없듯이 평화가 없으면 경제도 없다'고 말했다. 당연히 평화가 공고화되면 경제는 더욱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상호신뢰가 없는 상황에서는 평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선경제 후평화'이고 그 다음에 '더 큰 경제'인 것이다. 그런데 평화가 있어야만 경제가 도약하고 더구나 경제의 꽃을 피우려면 평화의 땅부터 있어야 한다면서 '선평화 후경제'의 논리 구조를 슬그머니 앞세웠다. 본말전도이다. 그래서 이름도 '경제평화론'이 아니라 '평화경제론'이다.

문재인정부는 평화를 최대의 업적으로 삼고 있어, 평화경제론은 앞으로 더욱 강조될 것이다.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이는 경제위기 속에서도 평화만 이루면 저절로 경제가 성장할 것이니, 힘들더라도 평화를 향해가는 정부의 발걸음을 무조건 따라오라고 한다. 심지어 평화를 이루지 못했기에 경제가 어려운 것이라 호도하고, 나아가 대북제재 해제가 우리 경제발전을 가져온다는 논리 비약을 유도할지도 모른다.

이는 북한이 한국경제의 미래라는 논리다. 금강산관광 재개를 강조하면서 '평화관광'이라는 말까지 등장하고 있다. 평화가 관광 활성화를 가져오기야 하겠지만 역시 본말전도의 논리이다. 문재인정부에게 '평화'야말로 전가의 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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