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놀이터처럼 만들어야 진짜 `샌드박스`다

이재훈 KISTEP 변호사·연구위원

  •  
  • 입력: 2019-04-25 18:09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기고] 놀이터처럼 만들어야 진짜 `샌드박스`다
이재훈 KISTEP 변호사·연구위원
한국은 '신조어 대국'이라 할 만하다. TV 예능프로그램만 봐도 하루가 다르게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로 가득 찬다. 무리 속에서 트렌드를 이해하고 잘 지내는 사람을 '핵인싸'라고 부른다. 무리와 섞이지 못하고 밖으로 겉도는 아웃사이더가 되지 않고 '핵인싸'가 되려면 신조어도 열심히 학습해야 하는 시대다. 그런데 이는 꼭 예능프로그램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작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한국형 규제 샌드박스를 언급했고 요즘 뉴스마다 언급되는 것이 규제 샌드박스다. 이제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핵인싸'가 되는 세상인가 보다.

2015년 영국은 금융혁신 촉진을 위해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했다. 제한된 조건 하에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 관련 규제를 유예하거나 완화해주는 제도로, 주로 시장 참가자들이 완화된 규제 환경에서 핀테크 분야를 시험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설계됐다. 용어는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자유롭게 뛰어 노는 모래놀이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부모는 아이들이 샌드박스에서 모래를 가지고 자유롭게 무엇을 만들든지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샌드박스 밖에서 노는 모습을 모두 확인할 수 있고 아이가 모래를 먹으려고 하는 등 안전에 위협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이를 제지할 것이다. 이후 다른 주요국들도 금융 분야에 규제 샌드박스 도입을 추진했다.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복합적인 규제 때문에 변화를 신속히 반영할 수 없었던 우리나라는 다양한 분야에 규제특례를 적용하는 한국형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했다.새로운 제품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관련 분야 규제를 제한된 조건 하에서 면제하거나 유예하는 제도로, 범위와 한계는 법률로 정했다. 한국형 규제 샌드박스는 크게 신속확인 제도, 규제특례 제도, 임시허가 제도, 즉 규제혁신 3종으로 구성된다. 신속확인은 신기술이나 서비스를 활용해 사업을 하려고 할 때, 해당 사업이 기존 규제 대상인지 여부, 어떤 허가가 필요한지 등을 신속하게 확인해줄 것을 주무부처에 신청하는 제도다. 규제특례는 신기술·신서비스를 활용한 사업 허가 신청이 불가능하거나, 규제 적용 여부가 불명확해 사업을 하기 어려운 경우에 활용된다. 일시적으로 규제를 적용하지 않고 제한적 시험과 기술적 검증을 해볼 수 있다. 임시허가는 규제특례 제도와 유사하다. 다만 출시 준비까지 다 된 제품이 단지 시판 전 규정 정비가 늦어지는 경우에 활용할 수 있다.

한국형 규제 샌드박스는 영국 제도와 차별화된다. 금융 분야만이 아닌 정보통신·산업융합·지역혁신 산업에 확대 도입한 것은 세계 최초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제도 운영에 기대와 우려가 공존할 수밖에 없다. 이 제도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정책적 방안은 현재도 많은 논의를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여기에 몇 가지만 덧붙이고자 한다.

첫째, 한국형 규제 샌드박스는 어디까지나 기존 법령으로 혁신이 지연되거나 시도되지 못하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한시적인 도구임을 인식해야 한다. 규제혁신 3종 세트도 한시적 제도 완화·유예에 불과하다. 규제 샌드박스 덕에 단순히 몇몇 사업체에 규제가 완화·유예됐다 해도 거기서 끝이 아니다. 추후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입증된 내용이 입법으로 이어져 법제 내에서 기술혁신이 운용될 때 효과가 극대화된다.

둘째, 신청·심의 관련 자료 등 규제 샌드박스 절차에서 생성된 정보는 공개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 기존 법령에서 규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규제 유예를 해주려는 사항이 무엇인지 내용과 함께 유예된 법령 조문을 명확히 적시해야 한다. 보도자료를 통해 심의 내용을 공개하지만 실증특례 및 임시허가 사항 홍보에 치우친 것 같다. 정보공개가 충분히 이뤄져야 동종 업계 기업들이 별도 법률자문이나 컨설팅 없이도 필요한 서류를 제출해 손쉽게 규제 샌드박스 적용을 받을 수 있다.

셋째, 연구개발 관련 규제 샌드박스 신청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형 규제 샌드박스는 기술 기반 신시장 창출에 적합한 형태로 설계됐다. 이전단계인 신기술·신서비스 연구개발 행위에 있어서는 신청제도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연구개발 안정성·효용성 등의 검증을 위한 규제 샌드박스 신청 경로도 열어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규제 샌드박스의 혜택이 특정 업체와 지역에 집중된다는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균형을 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요분야별 자문체제를 미리 구축하고, 신청 내용을 해석·심의할 수 있는 역량과 함께 심의·실행과정에서의 전문성·공정성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민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국형 규제 샌드박스가 국내를 넘어 세계의 '핵인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