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섭 칼럼] 넷플릭스에 안방 내주고, 족쇄 채우는 韓國

최경섭 ICT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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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섭 칼럼] 넷플릭스에 안방 내주고, 족쇄 채우는 韓國
최경섭 ICT과학부장
20년이 넘은 일이다. IMF 한파로 한국경제가 꽁꽁 얼어붙어 있던 1998년, 세계적인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 국내 통신사인 데이콤과 합작사를 설립하고 국내 위성방송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외국자본의 국내 방송투자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던 방송법 때문에 아주 제한된 범위내에서의 공동투자 형태였지만, 머독의 국내 방송시장 진출 시도는 당시 국내 언론계는 물론 산업계 전반에 큰 논란을 촉발시켰다.

개방론자들은 세계무역기구(WTO) 경제체제 하에서 방송도 시장개방을 통해 해외 문화를 받아들이고 국내 방송업계도 해외시장 진출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창했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머독의 시장진출이 지상파 중심의 국내 공영방송 기조를 한순간에 붕괴시키고, 문화적 종속성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머독이 압도적인 콘텐츠 경쟁력을 앞세워 케이블TV, 위성방송 등 국내 유료방송 플랫폼을 통해 한순간에 국내 유료방송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머독의 국내 위성방송 진출전략은 국내 방송계의 견제와 세계 미디어 시장의 트렌드 변화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한 채 끝났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방송시장 개방을 둘러싼 논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과거 논란의 진원지가 머독 이었다면, 지금은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기업으로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1억5000만명의 유료 가입자를 거느린 넷플릭스는 막강한 자본력과 콘텐츠 경쟁력을 앞세워, 이미 국내 미디어 시장의 블랙홀로 부상했다. 넷플릭스가 국내 미디어 시장에 진출한지 불과 3년만에 24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넷플릭스가 수백억원의 자체 제작비를 들여 만든 대작 '킹덤', '미스터 션샤인' 등은 국내 지상파, 케이블TV PP(콘텐츠제작업체)들을 압도하고 있다.

사용자들이 영상콘텐츠 공급자이자 또 고객인 유튜브도 국내 미디어 시장의 폭풍의 핵으로 부상했다. 현재 유튜브는 과거 TV 시청자들은 물론 네이버, 카카오 등 기존 인터넷 사용자들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실제 모바일 기기에 익숙한 10대나 20대는 유튜브로 검색하고, 전통적인 TV 세대인 50~60대 들도 이제 더 이상 국내 지상파 방송에 만족하지 않는다.

지상파의 위기, 나아가 한국 미디어 시장의 총체적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글로벌 사업자들이 국내 미디어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장악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치권과 규제당국의 시각은 여전히 지상파 중심, 규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 글로벌 업체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영토확장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미디어 시장은 아직도 시장 보다는 규제 중심의 프레임에 함몰돼 있다.

규제 중심의 미디어 정책, 방송정책의 전근대성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 최근 논란이 된 유료방송 합산규제다. 합산규제 정책은 특정 유료방송 사업자가 전체 시장의 3분의 1인 33.3%를 넘지 못하도록 한 사전 규제장치다. 정치권과 국회에서는 지난해 7월 일몰된 유료방송 합산규제 법안을 다시 한시적으로 재연장 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특정 사업자의 유료방송 지배력이 콘텐츠 독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공정경쟁 차원에서 이를 사전적으로 규제하겠다는 게 정부와 정치권의 시각이다.

초연결 시대, 세계 미디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각축전은 통신망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간 합종연횡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방송사와 통신사, 케이블TV 사업자간 빅딜이 본격화 된 지 오래다.

사업별로 높은 칸막이가 쳐져 있던 국내 미디어 시장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IPTV 사업자와 케이블TV 사업자간 기업결합이 점화됐고, 넷플릭스, 유튜브 등 글로벌 업체들의 공세에 맞서 SK텔레콤과 지상파방송사들도 손을 잡았다. 미디어 시장의 거대한 변화에 기업들은 생존을 건 도전에 나서고 있다. 정부나 정치권이 과거 규제 패러다임을 앞세워 막을 수도, 또 막아서도 안되는 일이다.

최경섭 ICT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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