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시론] 외풍 막으려면 국민연금 민영화해야

프린트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시론] 외풍 막으려면 국민연금 민영화해야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지난 달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작년 7월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스튜어드십 코드)을 도입한 이후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한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본디 영국에서 주인 없는 회사의 문제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나왔다. 회사의 장기발전 및 주주 이익에 주안점을 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 기업활동 전반에 대한 개입을 촉구하며,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이름 아래 주인 있는 회사를 주인 없는 회사로 만드는 데 중점을 두는 것으로 바뀌었다. 국민연금의 이런 행동을 재산권과 주식회사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인간이 소유하고 누릴 수 있는 것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 각 개인이 누리는 마음 속의 행복인데, 이는 아무도 가져갈 수 없다. 둘째, 개인이 가진 수려한 용모나 우수한 두뇌 등인데, 이는 남이 약탈해 갈 수는 있지만 약탈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연히 이 두 가지는 빼앗길 염려없이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개인이 소유하는 유·무형의 재산인데, 이는 약탈이 가능하다. 따라서 사회 질서의 근간이 되는 도덕과 법에는 사유재산권(소유의 안정성)을 보호하는 것들이 많다. 사유재산은 자유·정의·평화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주식회사의 원형은 자본가-기업가가 설립해 통제 주주가 되고 의사결정 권한을 자신에게 집중하는 형태다. 그런 방식이 아니고는 주식회사가 설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주식을 소유하는 모든 주주는 넓은 의미에서 회사의 주인이지만, 매일매일 주식회사의 자원을 배분하고 관리하는 사실상의 주인(de facto owner)은 통제 주주를 비롯한 소수의 대표단이다. 여타 주주들은 경영을 위임한 자들로서 회사의 주인이 아니라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주식의 주인이다.

여타 주주들은 대표단의 의사결정으로 인해 손해를 볼 것 같으면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팔고 떠나는 것(exit), 주주총회에서 의견을 개진(voice)하는 것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특수한 목적을 가진 소수의 운동가나 이와 유사한 행태를 보인 이번 국민연금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주들은 비용이 적게 드는 전자의 방법을 택한다. 주주총회에 참석해 의견을 내기 위해서는 각종 자료를 검토하고 향후 경영 방안을 제안하는 등 많은 노력과 시간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분산 소유형 주식회사는 원형이 아니라 각 나라의 정치·사회적 여건 변화에 적응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테면 미국에서는 소수가 많은 자원을 배분하는 것을 꺼려한 대중적 정서를 뒷받침한 반(反)트러스트법 등에 의해 통제 주주가 축출됐다. 그런데 분산 소유형의 경우에는 재산권이 불분명해진다. 여타 주주들의 재산권은 사실상 자신이 보유한 주식에 국한되고, 이들은 주식을 장기 보유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도 마찬가지다.
사회 질서의 문란과 붕괴는 사유재산 침해에 따른 도덕과 법의 타락으로부터 시작된다.주식회사 제도에서 사실상의 주인을 내치는 것은 사유 재산권을 박탈하는 것으로서 소유의 안정성을 근본적으로 해치는 행위다. 사유 재산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회사를 설립하고 키우려는 자본가-기업가는 나오지 않는다.

국민연금이 권력 집단의 이념과 가치 실현의 도구가 되어 사기업의 경영에 간섭하면 경제는 망가지고 주주들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돈 많고 주인 없는 회사는 정글에 버려진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타 주주들이 그런 결정에 동의하는 행위는 그들이 회사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사기업에 대한 경영 간섭을 차단하는 길은 국민연금을 민영화하는 것이다. 한 때 논의가 활발했던 국민연금 민영화 이슈를 다시 살려야 한다. 자본가-기업가들도 기업의 생존은 물론, 평화로운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그들이 가진 자원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