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수 칼럼] 老鋪의 로봇 활용법

예진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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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수 칼럼] 老鋪의 로봇 활용법
예진수 선임기자
맛있는 기행을 다녀왔다. 얼마 전 주말에 진행된 서울도서관의 탐방프로그램 '서울의 노포를 이야기하다'에서 멋과 맛을 동시에 음미할 수 있었다. 여행부문 베스트셀러인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 저자인 박찬일 셰프의 설명을 들으며 서울의 노포 맛집들을 잇따라 찾았다. 6.25 전쟁 때도 탕 끓이는 불을 끄지 않았다는 '청진옥'의 전설에 감탄하고, 을지로 조선옥에서 19공탄 연탄불에 잘 익힌 소갈비를 맛보면서 60년 경력이 넘은 노주방장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박 셰프가 노포의 '장사 내공'과 얼치기 한식 세계화를 대비시킨 대목에서 폭소가 터졌다. 국제 행사에 맞춰 갑자기 급조된 황당 영어메뉴가 즐비했다. 박 셰프가 직접 보여준 메뉴판 사진이 그 증거다. 한영 음식 메뉴판에 '방어구이'라는 한글 메뉴 밑에는 외부로부터 침략을 막는 '방위'로 오역한 'fried defense'(프라이드 디펜스)라고 인쇄돼 있었다. 대게는 '스노 크랩' 대신에 '대체로'란 뜻의 'usually'(유즈얼리)라고 표기했다. 번역기를 돌린 듯, 생고기는 '라이프스타일 미트'(lifestyle meat), 돼지 주물럭은 '마사지 포크'(Massage Fork)', 육회(肉膾)는 여섯번을 뜻하는 '식스 타임스'(six times)라고 버젓이 적어 놓았다.

차분하게 짚어가기보다, 헐떡거리면서 앞으로 달려가는 데만 몰두하다 '한식의 저급화'를 자초한 셈이다. 이 때문에 60∼70년 이상의 세월을 이기고 전설이 된 노포가 더욱 영롱한 빛을 발한다. 이제는 노포도 100∼200년 가업을 유지하기 위해 4차 산업혁명 기술 접목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1933년에 등장한 국내 최고 국수 제조업체 중 하나인 풍국면은 국수 생산 공정에 다관절로봇을 도입해 포장을 하고 있다. 포장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여성들이다. 그들이 팔이 아파서 기피하는 고된 노동을 로봇이 대체하고 있어 인기라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몇 년 전에 국수뽑는 로봇이 등장하기도 했으니 이젠 노포의 로봇 도입이 새삼스럽지는 않다.

간병도우미 등 돌봄 분야 로봇 시장도 급팽창하고 있다. 노인과 중환자를 위한 자동배변처리기를 일본에 수출하는 업체도 한국기업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간병 분야 일손 부족 등의 요인으로 지난해 '간병도우미료' 물가는 통계를 작성한 이래 최대폭으로 올랐다. 산업부가 지난 22일 발표한 '로봇산업 육성 대책'에서 돌봄, 의료, 물류, 웨어러블 등의 서비스 로봇을 적극 육성하기로 한 것도 고령화라는 과녁을 겨냥한 포석이다. 하지만 아직 국내 로봇 산업은 일본· 독일 등에 크게 뒤져있다. 로봇의 껍데기는 잘 만들지만 알맹이 격인 핵심 기술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감속기, 센서, 제어기 등 로봇 핵심부품과 소프트웨어의 국산화율은 50%에도 못 미친다. 손쉽게 외국 부품을 사서 쓰면 된다는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일본·독일·미국 등과의 로봇 산업 격차는 갈수록 벌어질 것이다. 글로벌 로봇 경쟁이 혹독해지는 상황이다. 2023년까지 매출액 1000억원 이상 로봇전문기업을 20개 뚝딱 육성할 수 있다는 생각은 엄청난 착각이다. 미국이 일찌감치 2010년에 로봇 산업 로드맵으로 내놓고 정교한 산업정책을 펴온 것과 비교하면 출발도 늦었고 순발력도 뒤진다.

로봇 혁명으로 일자리가 큰 폭으로 축소될 것이라는 암울한 관측이 나온다. 영국 옥스포드대는 2033년에 일자리의 47%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앞으로 공장인력이 딱 한 명만 필요할 것이라는 극단적 예측도 있다. 공장을 100% 자동화하게 되면 이 공장을 지키는 개의 밥을 주는 인력 한 사람만 필요할 것이라는 우스갯 소리다.

하지만 최근에는 생산성 향상을 꾀하거나 사회적 약자를 돕는 협동로봇이 대거 등장하면서 로봇의 개념을 바꿔놓고 있다. 이제는 한국 산업계도 달라져야 한다. 이미 주도권을 빼앗긴 기계로봇 분야보다는 거대한 시장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차세대 협동로봇 시장을 최우선적으로 공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담하게 규제를 부수는 일부터 시작해보자.

예진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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