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원장
![[기고] 국가 R&D 체질개선, 특별법에 달렸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903/2019031302102369650001[1].jpg "[기고] 국가 R&D 체질개선, 특별법에 달렸다")
그동안 정부와 과학기술계는 연구·개발 성과제고와 혁신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그렇다면 과연 근본적인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국가 R&D 사업과 시스템 혁신 요구에 지속적으로 대응해왔지만 그 틀은 과거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국가 R&D 관리 법령들이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현행 국가 R&D사업의 공통규범 성격을 가진 '공동관리규정'은 2001년 제정됐다. 이후 예산은 5배 이상, 과제수는 1만6812개에서 6만1280개로 약 3배 증가하는 등 R&D 환경은 급변하였으나 법령은 20년째 '선진국 추격형·정부 주도' 철학에 멈춰있다.
공동관리규정 외에도 부처별·사업별로 100개 이상의 행정규칙이 별도로 존재한다. 각종 매뉴얼·가이드라인을 포함하면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하위 규정들이 연구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적용되면서 연구자에게 각종 불편을 초래하고 규제와 부담으로 작용했다. 부처별·사업별로 분산된 법령체계는 일부 개선되더라도 실제 연구자에게 미치는 영향에는 한계가 있다. 또 현재 법령은 국가 R&D사업을 위한 행정절차 중심으로 규정이 나열돼 있어 R&D 혁신을 위한 법적 토대가 미흡하다. 정부나 연구기관의 역할과 책임, 국가R&D의 철학 방향이 부재한 상황에서 행정서비스는 국민과 연구자 눈높이에 미치기 어렵기 마련이다. R&D 혁신안이 나와도 실질적으로 반영할 법제 틀이 없다면 정부 정책과 연구현장 체감 간 엇박자는 자명하다.
이런 배경에서 최근 국가 R&D 전체에 대해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원칙과 기준을 확립하고 연구현장 생태계를 고려한 '국가연구개발 혁신을 위한 특별법'이 발의됐다. 특별법안은 현행 과학기술기본법의 일부 조문을 이관하는 동시에 공동관리규정의 주요 내용을 토대로 하면서 국가R&D 혁신 사항을 반영했다. 그 주요 내용은 첫째, 국가 R&D사업 추진에 필요한 원칙과 기준을 정립했다. 연구기관의 자율성이나 R&D 특성상 절차적 유연성 보장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R&D 예산 20조원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국가 R&D사업에 대해 규정을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했다. 국가 R&D사업을 수행하는 모든 연구자에게 동일한 권리를 보장하고 같은 책임을 담보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하위령 제·개정을 통해 관계 부처 사업 전반에 대해 규제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둘째, 현행 공동관리규정에서 규정된 사항 중 일부를 법률로 격상했다. 특히 국가 R&D사업 추진에 관한 특별법 형태로 우선 적용토록 해 복잡다기한 법령체계를 효율화했다. 국가 R&D사업별로 다르게 운영되는 관리기준·지침·규정 등을 통일하고 다양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모호한 규정 적용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소할 수 있게 됐다. 그간 부처별로 파편적으로 추진돼 온 국가R&D사업 규제 해소 등 R&D 혁신 정책을 범부처적으로 적용하는 초석이 마련되는 것이다. 셋째, 특별법은 자율적이고 책임 있는 연구환경 조성 관련 사항을 담았다. 매년 신규 과제 추진 사항을 예고하고 정기적으로 R&D 수요를 반영토록 해 예측 가능하고 수요를 고려한 내실 있는 과제 추진이 가능해진다. 정부가 R&D과제 주제를 선정하는 방식이 당연시되는 풍토에서 연구자 수요를 반영하고 연구자가 주도적으로 과제를 제시·선정하는 철학이 정립되고 연구주제 선택에 대한 연구자 자율성이 확보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연구진실성과 연구윤리 규범을 범부처 규정으로 제정하고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는 연구윤리를 확립해 자율과 책임의 균형을 이루고자 하였다. 또한 국가R&D사업 관련 부정행위는 1차적으로 소속 기관이 검증토록 해 연구기관으로서의 책임을 강화하였다.
지금까지는 국가 R&D 혁신의 방향성과 철학, 국가 R&D 사업의 종합적 기준을 담은 법률이 부재했다. 범부처 공통규범인 특별법이 제정되면 국가R&D 체제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국가 R&D 운영과정 전반의 비효율과 불필요한 부담을 제거하는 동시에 자율적이고 책임 있는 연구개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특별법 제정에 힘을 실어야 할 때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