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호 칼럼] 우리 자신 위한 美·北 중재 나서라

박선호 정경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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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호 칼럼] 우리 자신 위한 美·北 중재 나서라
박선호 정경부 부장

미북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국 결렬됐다. 하루가 지나 미국과 북한은 서로 상대방이 잘못했다는 지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이 끝나고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영변외 더 큰 핵시설을 이야기했더니 북이 놀랐다"고 말했다. "영변만으로 경제재제 90% 이상의 해제를 요구했는데,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는 게 미국측 입장이다.

북한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본 뒤 억울하다는 듯 현지시간 자정 무렵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 자리에서 북한은 "자신들은 경제 제재를 일부만 해제해 달라고 했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앞서 북한의 한 고위 인사는 "미국 계산법을 김정은 위원장이 의아해 하신다"까지 했다.

그러자 미국은 바로 '말장난'이라고 맞받아쳤다. 회담 결렬 직후 공개된 사진에서 양국 두 정상이 웃고 있는 모습이 무색할 정도다. 사실 이 모습이 진짜인지 모른다. 최소한 회담 결렬 원인을 놓고 다투는 미북의 모습은 그만큼 둘이 꾸었던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이(異)'가 컸었고, 아직도 크다는 걸 보여준다. '차이가 이렇게 큰 데 그동안 미북 실무진은 무슨 진전을 이뤘다는 것인가'라는 의구심마저 든다. 김 위원장을 의아하게 만든 것과 같은 이유에서 나온 의구심이다.

그동안 기대와 희망의 자기 최면에 빠져 실제 큰 차이를 간과했던 것이다. 김 위원장 지적처럼 북의 계산법과 미국의 계산법이 틀린 것이다. 굳이 유추해보면, 미국은 북한과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 '핵실험을 하지 않으면 된다'는 기본 조건을 서로 충족했다고 보는 것 같다. 하지만 북한은 '대화 시작을 위해 핵실험 중단 등을 먼저 양보했으니, 이제 미국이 경제제재에서 통 큰 양보를 해야한다'라는 입장일 수 있다.

자기최면에 취해 '오판'을 하지 않았던 것은 오히려 다행이다 싶다. 많은 전문가들이 "배드딜(Bad Deal)보다 노딜(No Deal)이 낫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고 했다.

하노이 회담 직전만 해도 자국에서 정치적 궁지에 몰린 트럼트 대통령이 정치적 이벤트를 위한 배드딜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특히 처음 만나 "김정은 위원장은 위대한 지도자다. 북한은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나라"라고 치켜세울 때만해도 한반도 봄에 대한 기대가 한껏 부풀어 올랐다.

한편으론 '그저 좋은 게 좋은 것'으로 결론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이 점에서 다행히 트럼트 대통령은 철저한 실리주의자였다. '회담 실패'라는 질책에 대한 부담에도 단호하게 자리를 박찼고, 차려졌던 식탁마저 걷어찼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 실무진이 기자회견장에서 아무리 열심히 "회담의 진전은 있었다"고 변명을 해도, 김 위원장의 체면은 말이 아니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구 반 바퀴를 날아왔지만, 김 위원장은 기차로 3800㎞를 달려왔다. 베트남에 도착한 첫날 김 위원장은 주 베트남 북한대사관을 찾아 함께 "만세"까지 불렀다고 한다.

미북이 다시 멀어지면서 주목받는 게 우리의 역할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회담 결렬 당일 귀국길에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해 '적극적인 역할'을 당부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주문이다. 북핵 문제는 미국의 문제이기 이전에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북핵을 우리의 문제로 보느냐, 마느냐'에 중재자로서 우리 정부의 역할이 달라진다. 북의 입장에서 미국의 양보를 끌어낼지, 미국의 입장에서 북의 양보를 끌어낼지 역할이 정해진다는 말이다. 그동안에는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미북 대화를 이끌어내는 게 우선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하노이 회담에서 보여졌듯 실제 비핵화의 수준과 경제제재의 수준이 구체적으로 논의돼야 하는 시점이다.

많은 국민이 한반도의 비핵화는 미국이 요구하는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북은 피를 나눈 민족이지만, 누구보다 우리의 실제 피를 가장 많이 흘리게 했다. 본래 형제가 더 무섭게 싸우는 법이다. 이제 정말 정부의 선택이 남았다. 미북 북핵담판, 우리는 누구를 위해 중재에 나서야 하는가? 미국이나 북한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 나서야 한다.

박선호 정경부 부장 sh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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