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韓電工大 설립은 전시행정 표본](http://contents.dt.co.kr/images/201902/2019021802102269660002[1].jpg "[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韓電工大 설립은 전시행정 표본")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었던 한전공대의 설립이 구체화되고 있다. 정부와 한전은 지난 달 부영그룹으로부터 전남 나주에 위치한 부영골프장을 기증받기로 하고, 이곳을 한전공대 최종예비후보지로 선정했다. 오는 2022년 개교를 목표로 하는 한전공대는 포항공대(POSTECH)와 울산과학기술원(UNIST)을 모델로 하고 있다. 포항공대와 울산과기원은 각각 1986년과 2006년 출발한 후발주자였지만 아낌없는 투자로 세계적 교육기관 반열에 들어섰다. 한전공대 역시 재학생들에게는 전원 등록금 면제와 기숙사 생활을, 교수들에게는 고액 연봉을 내걸고 국내 최고의 대학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필자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전남지역에 좋은 공과대학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한다. 하지만 한전공대를 꼭 신설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새로운 공대 설립은 무엇보다 교육부가 그동안 추진해온 대학구조개혁작업에 역행한다. 지난 1997년 이후 지속된 결혼 기피와 출산율 저하의 여파로 고교 졸업자보다 대학입학자가 많은 상황이 현실화되고 있다. 앞으로 2년 뒤인 2021학년 고교 졸업생 수는 45만여 명. 이는 2019학년도 대학모집 인원 55만여 명보다 10만 명이나 적다. 그렇기에 교육부는 지난해 '대학기본역량진단'을 통해서 30개 4년제 대학을 '역량강화대학'으로 선정, 정원의 10% 감축을 권고하는 등 대학정원조정을 하고 있다. 대학정원 축소 폭은 2021년도에 예정된 3주기 대학평가를 통해 확대될 예정이다.
또 다른 문제는 대학설립 및 운영 주체인 한전이 지난해 1조원 가까운 적자를 기록한 적자공기업이라는 점이다. 한전공대는 초기 시설 건축 비용이 5000억 원에 달하고, 매년 최소 500억 원 이상의 운영비용이 소요될 전망이다. 연봉 4억 원의 교수 100명을 채용하면 인건비로만도 연 400억 원이 나가게 된다. 교직원을 채용하고, 도서관 및 기숙사 운영, 시설 관리 및 유지 비용 등을 고려한다면 연간 운영비용은 1000억 원을 훌쩍 넘는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한전의 적자가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라는 것이다. 과도한 적자로 인해 공기업의 부실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긴요하지 않은 지출을 늘리는 것은 일종의 배임행위에 해당된다. 누적된 적자는 결국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보전될 수 밖에 없다.
셋째로 한전공대를 설립해 학부 400명, 대학원생 600명에 대한 투자는 중복투자 및 불공정한 경쟁을 부추기게 될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710명)를 비롯, 포항공대(320명)와 울산과기원(360명), 대구경북과기원 (220명), 광주과기원(200명) 등 이공계특성화의 입학정원만 해도 1810명에 달한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대학 및 대학원 진학자원이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한전공대 신설은 인근 광주과기원과의 경쟁은 물론 다른 이공계 특성화대학의 교육에도 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이들 특성화대학에서는 모두 에너지 분야 전공을 개설, 운영하고 있어 결국 관련 교육 및 연구 역량을 낮출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전남지역에 우수 공대를 키우고자 한다면, 신설보다는 전남대학교나 조선대학교, 목포대학교 등 기존 지역대학에 에너지특화학과의 신설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존 대학에 대한 지원을 통해 정책적 목표를 충분히,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음에도 나주에 공대를 신설하는 것은 대통령의 선거공약이라는 것 이외의 다른 의미를 찾기 힘들다.
선거철마다 대통령 후보들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다양한 약속을 해왔다. 하지만 어느 후보도 자신의 공약을 모두 실천할 수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철 공약 중에도 지킬 수 없는 부분이 꽤 있다.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청사로 이전하겠다"는 약속은 이미 지킬 수 없는 공약(空約)으로 판정됐다. "병역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는 고위공직에서 배제를 추진하겠다"고 했던 말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제조업 부흥과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했으나 산업경제는 오히려 활력을 잃고 말았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구조조정을 하면서도 적자 공기업을 중심으로 이공계특화대학을 설립하는 것은 엇박자 전시행정일 뿐이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든다는 것은 바로 엇박자 행정과 잘못된 초기 공약을 바로잡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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