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차현정 기자] 정부 여당이 증권거래세 개편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은 왜곡된 과세 체계를 바로잡고 주식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투자자들 사이에선 주식을 팔 때 이익과 손실에 상관없이 세금을 매기는 현행 증권거래세에 대해 '소득있는 곳에 세금'이라는 과세의 기본원칙에 어긋난다는 반발이 심했다. 호재를 받아든 금융투자업계는 일단 환영이다. 그러나 단계적 인하에 대해선 어느 정도 예상된 수준이어서, 실효가 큰 처방이 되려면 당장 절반 수준의 대폭적인 인하 조처가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세제 완화 설계과정이 한꺼번에 노출되는 것이 시장에는 더 합리적이겠으나 정부도 커지는 세수 공백을 마땅히 대체할 게 없는 만큼 단계적 인하 방식을 채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봤다.
◇단계적 인하 합의 "9부능선 진입"…"소폭 인하시 효과 미미"=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정책 유효성에 대해 투자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만큼 첫 인하 폭은 과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는 "증권거래세 개편이 9부능선에 진입했고 업계 관심의 관심은 이제 인하 폭과 인하 시기에 모아졌다"며 "해외 경쟁국가들과 비교할 때 당장 내년부터 현 0.3%인 세율을 절반인 0.15%까지 줄이는 것이 적정하다"고 강조했다.
증권거래세가 0.10~0.15%로 인하되면 주식 투자자는 연간 세금 3조~4조원을 덜 내게 된다. 거래대금이 급증한 지난해 기준 증권거래세(농어촌특별세법 포함)가 8조원(거래세 6조2000억원+농특세 2조2000억원)을 웃돌았다는 점을 고려해서다. 전배승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도 "증권거래세 전면폐지가 아닌 거래세율 소폭 인하에 그칠 경우 긍정적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봤다.
현재 일본을 포함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미국·독일 등 16개국은 증권거래세가 없다. 한국의 증권거래세율은 중국(0.1%)·대만(0.15%)·싱가포르(0.2%) 등 아시아 지역 국가에 비해 높다.
◇"'성공'한 일본 vs '실패' 대만…반면교사 삼아야"= 특히 단계적 인하 후 폐지에 성공한 일본 사례가 주목된다. 실제 0.55%에 달하던 일본의 증권거래세는 양도소득세를 도입한 1989년 0.30%로 절반 가까이 낮춘 이래 1996년 0.21%, 1998년 0.10%까지 내리고 이듬해인 1999년 4월 완전 폐지됐다. 일본은 거래세 폐지 이후 4~5년 증시환경 악화에도 시가총액 회전율이 크게 월평균 75%로 상승했다. 전 연구원은 "양도세와 거래세가 병존했던 90년대 일본 주식거래가 침체기를 보인 반면 폐지 이후 주식시장 환경악화에도 회전율과 거래대금은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특히 거래세율이 단계적으로 인하됐음에도 오히려 주식관련 전체 세 부담은 높게 유지됐다"고 말했다.
급격한 세율 적용으로 시장에 막대한 충격을 초래, 전환에 실패한 대만은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진단이다. 대만은 1989년과 지난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거래세 폐지와 양도세 전환을 추진했다. 그러나 대만 투자자들이 차명계좌를 통해 양도소득세를 회피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양도세 철회와 거래세 인상(0.6%) 조치를 결정했다 2013년 중반 다시 양도세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개인투자자 반발로 철회하는 등 혼란을 불러왔다. 대만은 2017년 증권거래세를 0.3%에서 0.15%로 인하해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투자상품 통합과세는 거래세 폐지 뒤 논의가 바람직"= 전문가들은 증권거래세 단계적 인하에 따른 거래비용 부담 감소로 거래대금 증가 등 시장 활성화 기대감이 높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실질 거래활성화를 거두기 위해서는 주식양도소득세 개편이 필수 조건으로 뒤따라야 한다는 조언이다. 김고은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양도소득세 확대로 개인투자자 거래 위축 등 단기적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양도소득세의 단계적 인상과 증권거래세의 단계적 인하 등이 맞물려야 중장기적으로 장기투자가 확대되는 계기가 되고 자본시장 발달에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정부 여당이 유력 검토하는 '최운열 의원안'에 따르면 양도소득세율은 중소기업의 주식은 10%, 그 외 기업의 주식은 20%로 하되 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구조다.
다만 주식양도소득세 강화가 증권사 실적에 긍정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라고 봤다. 강승건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양도소득세의 정비는 단기투자보다 장기투자를 유도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모험적 투자자들의 투자 축소 가능성을 고려하면 증권사 실적에 긍정적 시그널로만 작용하진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또 다른 업계 숙원인 금융투자상품 통합과세는 증권거래세 폐지 시점에 재논의될 가능성이 커졌다. 세제당국인 기획재정부가 부담을 느끼고 있어서다. 더불어민주당 자본시장활성화특별위원회 관계자는 "특위는 한번에 정비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이지만 세제라는 것이 기재부 협의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각 주제별 시행시기는 법안 최종 통과과정에서 다시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봉 한성대 교수는 "현행 투자상품 과세체계가 상품별로 달라 손실 여부에 상관없이 세금을 낼 수밖에 없는 기형적 구조인 만큼 손보는 것이 맞다"면서도 "직접거래 외의 파생되는 상품은 증권거래세 폐지 시점에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현정기자 hjcha@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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