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칼럼] 미래비전이 실종된 나라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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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1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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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칼럼] 미래비전이 실종된 나라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9년이 시작된 지 1개월이 지났고, 이제 본격적으로 달려야 할 시점이다. 지난 어느 한 해도 만만치 않았지만 2019년 역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결코 쉽지 않은 해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가능했던 것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2019년 2월 정치 영역에서는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가운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이 어떻게 조율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는 글로벌 경제가 침체할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 우리 경제의 국가경쟁력을 어떻게 끌어올리고, 청년실업문제 등에 대해 가시적 성과를 보일 것인가 등이 문제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멀리 보자. 과연 2019년 대한민국의 비전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가? 해방 직후, 전쟁 직후에는 생존 그 자체를 위해 노력했고, 그 이후에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접어든 지금 우리 국민들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이 힘든 세월을 살고 있는가?

3포, 5포를 이야기하고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세대는 '우리도 한 번 잘살아 보세'를 노래하던 세대에 비해 행복한가? 확실히 그 시대에 비해서 민주주의가 성장했고 경제도 발전했지만, 미래에 대한 뚜렷한 희망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행한 세대가 아닌가? 비록 힘들었고 수입도 지금보다 훨씬 적었지만, 평생직장이라는 생각을 갖고 노력했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며 기초를 쌓았던 세대에 비해 3D업종을 기피하고 보수가 적더라도 힘이 덜 드는 안온한 직업환경을 선호하는 오늘날의 세대가 더 행복한 것인지는 구세대에 속하는 나로서는 정말 모르겠다.

어쩌면 정치적·경제적으로 선진국에 가까워지면서 나타나는 일반적 현상인지도 모른다. 가진 것들이 많아지면서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게 되고, 그런 가운데 국민 전체가 하나로 뭉쳐서 세계와 경쟁하면서 발전하는 것보다는 가진 것들을 나누기에, 자기 몫을 찾는 것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아닌지…

분명한 것은 이런 변화의 부작용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작게는 세대간 인식차로 인한 갈등에서부터, 크게는 경제적 양극화가 정치적·이념적 양극화로 이어지면서 남남갈등을 심화시키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해결책은 모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 방향은 다양할 수 있다. 독일의 쉬뢰더 전 총리가 추진했던 개혁 프로그램 '어젠다2010' 처럼 노사관계의 합리화, 사회보장제도의 개혁 등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강한 확신을 공유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또한 끊임없이 혁신을 강조하는 미국처럼 새로운 혁신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2019년 대한민국의 비전은 무엇인가? 한편으로는 혁신성장을 부르짖고, 다른 한편으로는 더불어 사는 사회를 강조한다. 그런 가운데 진영논리에 의한 편가르기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혁신성장에 필요한 규제의 완화는 뒷걸음질이고, 진영논리와 양극화는 더불어 사는 사회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 국가 비전은 혼란에 빠져있고, 국민들은 비전을 상실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은 사람들, 국가발전에 대한 비전을 찾지 못한 국민들은 불행하다. 현재가 풍요롭지 못해서가 아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이를 통해 발전하는 인간의 본성이 탈출구를 찾지 못해서다. 그리고 그 불행이 계속 축적되어 임계점을 넘어서게 되면 또 다른 불행으로 이어지는 도미노 현상이 우려된다.

이제 대한민국의 긍정적인 미래에 대한 비전,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비전을 찾는 것은 정치권의 선택적 과제가 아닌, 필수적 의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유를 두기 어려운 매우 시급한 과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단순히 국민의 지지를 얻어 정치적 세력을 확장하고 선거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의미와 중대성을 갖는 것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대처 총리가 영국병을 치료했듯이 대한민국병을 치료할 미래 비전은 누가 제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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