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배 칼럼] `지구화 4.0시대` 갈 길 먼 한국외교

[김상배 칼럼] `지구화 4.0시대` 갈 길 먼 한국외교
    입력: 2019-02-10 18:22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상배 칼럼] `지구화 4.0시대` 갈 길 먼 한국외교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난달 23~25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세계경제포럼(WEF)이 열렸다. 다보스 포럼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이 포럼에는 매년 1월 전세계 각계 지도인사들이 모여서 세계경제의 현안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고 있다. 이번 다보스 포럼이 던진 화두는 '지구화4.0'이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다차원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변화에 대응하여 새로운 글로벌 아키텍처를 설계하자는 것이었다. 사실 지구화4.0은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 변화와 과제를 압축해서 표현한 것으로, 2016년 다보스 포럼이 제기한 4차 산업혁명과 버전 코드를 맞추어 고안된 용어이다.

지구화1.0이 1차 세계대전 이전 국경을 넘는 사람의 이동과 상품무역을 촉진하는 자유주의와 제국주의에 의해서 추동되었다면, 지구화2.0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유엔, IMF, GATT/WTO, 세계은행 등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자유분방한 지구화의 문제를 해소하려는 의도로 추진되었다. 이에 비해 1990년대 이후의 지구화3.0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서 국경을 넘는 생산의 지구화를 핵심으로 했는데, 첨단 기술력을 보유한 국가와 기업들에 힘을 집중시킴으로써 국제적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이러한 연속선상에서 이해한 지구화4.0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이나 로봇기술의 도입이 사람이나 공장이 이동하지 않고도 글로벌 차원의 협업을 가능케 하는 '버추얼 지구화'를 주 내용으로 한다. 지구화4.0의 기본 구상을 제공한 스위스 제네바대 국제경제대학원의 리처드 볼드윈 교수는 이러한 변화를 '글로보틱스 격변(The Globotics Upheaval)'이라고 불렀다.

다보스 포럼이 내건 지구화4.0은 4차 산업혁명이 야기할 격변에 직면하여 아직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작금의 현실을 통렬히 지적한다. 오늘날 4차 산업혁명의 빠른 기술발달은 국내외 차원에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정치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며 생태학적 도전을 야기할 우려를 낳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발달 추세에 적응하여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면서도, 그 와중에 발생하는 다차원적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와 기업, 지역 및 국제기구들이 나서 새로운 거버넌스의 프레임워크를 구축하자는 것이 지구화4.0의 문제의식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보스 포럼은 공존과 공영을 위한 지구화의 질서를 새롭게 설계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정작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등 주요국 정상들이 줄줄이 불참하면서 올해 다보스 포럼의 문제제기가 무색해진 느낌이다. 일차적으로 이들의 불참은 국내정치 불안 때문이라지만 근본적으로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강대국 간 이익갈등과 보호무역주의의 영향을 받은 바도 적지 않다. 이밖에도 국지적 무력충돌, 테러리즘의 발생, 민족주의의 발흥, 보수 정치세력의 집권 등과 같은 이른바 '지정학적 리스크'도 지구화4.0의 행보가 넘어야 할 걸림돌이다. 여기서 더 우려되는 것은 4차 산업혁명이 야기할 불균등 성장과 불평등의 심화가 이러한 지정학적 리스크를 한층 더 증폭시킬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4차 산업혁명과 지구화로 대변되는 물질적 격변과 탈(脫)지리적 흐름은 지속될 것이다. 최근 부쩍 거세게 불고 있는 지정학적 역풍에만 매몰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특히 지구화의 추세 속에 영토공간의 경계를 넘어서 지속적으로 증대되고 있는 초국적 흐름과 버추얼 공간의 향배를 제대로 읽어내야만 한다. 지구화4.0은 이러한 복합적인 공간에 적합한 규범과 표준 및 신뢰구축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글로벌 차원에서 새로운 거버넌스의 아키텍처를 설계하자는 문제제기이다. 협소한 '전통지정학'의 시각을 넘어서 이른바 '복합지정학'의 시각으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헤쳐 나가자는 경종이기도 하다.

이번 다보스 포럼에는 우리 외교부 장관도 '지정학적 전망' 회의에 토론자로 참석해 세계경제와 산업에 영향을 미칠 지정학적 문제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구축 프로세스에 대한 우리 정부의 비전과 정책도 설명했다고 한다. 또한 비공개 회의도 개최하여 글로벌 거버넌스의 미래나 기후변화 등과 같은 주요 현안에 대해서도 견해를 피력했다고 한다. 동북아와 한반도에 갇힌 시야를 넓혀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글로벌 아키텍처의 설계 과정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국 외교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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