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핀테크산업을 키운 설 세뱃돈

[포럼] 핀테크산업을 키운 설 세뱃돈
    입력: 2019-02-07 18:25
이호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포럼] 핀테크산업을 키운 설 세뱃돈
이호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이맘 때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세뱃돈 때문에 설날을 기다리며 잠을 설쳤던 기억이 난다. 제사를 지낸 뒤 부모님과 동네 어른께 세배를 드린 후 덕담과 함께 받은 세뱃돈은 항상'빳빳한 새돈'이었다. 부모님께 조금씩 용돈을 타서 쓰는 학창시절에 세뱃돈은 적지 않은 부수입원 역할을 했기에 또래의 친구들과 누가 세뱃돈을 더 많이 받았는지 경쟁했던 기억도 새롭다.

세뱃돈 문화는 중국에서 유래했다. 11세기 송나라 시대부터 우리나라의 음력 설에 해당하는 춘절(春節)이 되면 결혼을 하지 않은 자녀나 아랫사람에게 봉투에 돈을 넣어 덕담과 함께 건네는 풍습이 시작됐다. 중국사람들은 붉은 색이 복을 부르고 액운을 막아준다고 믿기 때문에 '홍바오'(紅包)라 불리는 빨간색 돈봉투를 사용했다. 세뱃돈 문화는 이후 일본으로 전파되어 에도막부 시대인 17세기 무렵부터 대도시를 중심으로 설날에 '오토시다마'(お年玉)라고 부르는 세뱃돈을 주는 풍습이 시작된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말까지 설날에 세배온 아이들에게 돈이 아니라 주로 떡이나 과일 같은 음식을 내주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다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부 상류층이 오토시다마를 국내에 들여왔고,이후 1960년대에 근대화와 함께 지폐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면서 세뱃돈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세뱃돈의 원조격인 '홍바오'가 중국의 핀테크 산업 발전의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 핀테크 산업을 대표하는 알리페이와 위쳇페이가 춘절 기간에 스마트폰으로 세뱃돈을 송금하는 '홍바오 전쟁'으로 중국 내 디지털 금융의 파이를 크게 키웠기 때문이다.알리바바의 온라인 지급 결제 서비스로 시작한 알리페이는 2011년부터 오프라인에서 QR코드 결제 방식을 도입하며 모바일 간편결제 시장을 열었다.위쳇페이는 카카오톡과 유사한 메시징 서비스인 텐센트의 위쳇(WeChat)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 결제 서비스다.알리바바와 위쳇페이가 지난 6년간 홍바오 송금을 유치하는 광고 전쟁을 치열하게 벌였고,그 결과 13억 인구가 설날 하루 동안 알리페이나 위쳇페이로 세뱃돈을 보내는 건수가 200억 건이 넘는다.

홍바오 전쟁이 키운 중국의 핀테크 산업규모는 이미 선진국 수준을 넘어 섰다. 중국에서는 먹거리, 교통수단, 숙박, 각종 생활서비스 등 거의 모든 서비스가 모바일 간편결제로 이뤄지고 있다. 신용카드나 현금거래(위조지폐의 위험 때문)를 받아들이지 않고 모바일 결제만 가능한 오프라인 가게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중국에서는 거지도 QR코드로 동냥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중국의 모바일 간편 결제 시장규모가 미국의 80배를 넘어섰고,세계 톱 10 핀테크 회사 가운데 4곳이 중국 업체다. 알리페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엔트파이낸셜의 기업 가치는 150년 전통의 골드만삭스를 뛰어 넘었고 국내 4대 금융지주의 시가총액을 다 합한 금액의 3배에 해당한다.

국내에서도 '세뱃돈=현금'이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 카카오페이와 시중은행들이 이번 설 명절을 맞아 세뱃돈을 정갈한 봉투나 '복주머니'에 담아 덕담과 함께 건네는 모바일 송금 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통장이 없는 손주에게 모바일 상품권으로 세뱃돈을 건네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다.

한국은행이 설 명절 때 세뱃돈을 위한 신권을 발행하는 비용도 역대 최소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명절전 신권을 받기 위해 은행에서 길게 줄을 선 모습도 이제는 점차 보기 어려운 장면이 되고 있다. 어른에게 세배하고 덕담과 함께 받던 '빳빳한 새돈'은 앞으로 과거의 추억으로만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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