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금융 프론티어
(17) 장원균 ABL생명 고객&디지털실장(CDO)
'잠들기 전 휴대폰 앱을 열어 '보험효력 정지' 버튼을 누른다. 다시 아침, 모닝 벨이 울리면 알아서 보험 효력이 개시된다. 출근을 위해 집 밖에 나서면서 보험료 게이지가 올라간다. 퇴근과 함께 마트에 들러 건강식재료를 구매하자, 보험료 게이지가 조금 내려간다.'
ABL생명이 꿈꾸는 미래의 보험, 위험에 노출된 만큼 보험요금도 올라가는 식이다.
"왜 불필요한 보험료를 내야 하죠? 필요한 순간 필요한 만큼의 보험, 바로 미래 디지털 시대의 보험의 모습입니다."
장원균 ABL생명 고객&디지털실장(CDO·전무)의 소신이다. 장 전무는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ABL생명 집무실에서 디지털타임스와 만나, "가스나 전기요금을 쓴 만큼만 내듯, 보험료도 보장받은 만큼만 내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장 전무는 ABL생명에서 디지털 총괄 임원을 맡으며 2015년 '제로(0)'에 가깝던 전자청약률을 지난해 90% 넘어 업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그는 "고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발달하는 여러 기술의 도움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양질의 정보와 빠른 소통능력을 갖게 된 만큼 보험업도 진화해야 한다"며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스마트폰을 신체 일부처럼 사용하는 인류, '포노사피엔스(Phono Sapiens)' 시대다. 디지털은 현재 모든 산업과 상품, 서비스에 직접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미래의 보험업 역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이다.
곧 맞이할 개인 맞춤형 보험상품에 기대를 걸어도 좋다고 장 전무는 말한다. 보험료를 정하는 기준을 세분화하면 슈퍼마켓에서 물건 고르듯 보험상품을 고르게 될 날이 머지 않았다고 했다. 현재는 나이와 성별이 전부다.
그는 "기술의 발달로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졌다는데 기반한다. 빅데이터 활용이 될 것이다. 위험측정을 통해 가격을 정하는 방식으로 고객이 마트에서 무엇을 사는지, 레스토랑에서 무얼 시켜 먹는지, 병원에 가서 어떤 진료를 받는지 등의 실시간 데이터가 모두 보험료 산정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건강한 사람과 재택 근무하는 프리랜서, 반대로 병약한 사람과 외근이 잦은 직장인이 갖는 위험요인이 다른 만큼 각각에 최적화한 상품을 모색하면 된다는 얘기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 희망적이라고 했다. 그는 "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당국과 업계 간의 공감대가 두껍게 형성돼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라며 "보험업의 디지털화가 가속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요즘 장 전무는 여타 선진 시장세미나에 관심이 부쩍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참석한 가트너 심포지움에서 들은 인상적이었던 사례를 전했다. 교통사고를 당한 고객이 사고부분을 찍어 보험사 앱에 넘기고 몇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보험금이 지급된 경우다. 장 전무는 "보험사가 사진만 보고 판정을 했을까. 보험금을 지급받은 고객 입장에서는 굉장히 심플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내부에 돌아가는 엔진은 어마어마하다. 이미지 인식과 손해부분 판정, 정도 판정, 금액산정, 계약 확인, 보험금 지급까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우리도 시도하려 한다. 다만 규제가 보다 유연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샌드박스 안에서 다양한 시도에 나서고 있는 싱가폴은 물론 이미 현실화하고 있는 중국도 장 전무가 주목하는 국가다. 중국의 경우 보험사와 의료기관과의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의료행위 후 기록이 발생하면 동시에 보험금이 책정되는 구조다.
장 전무는 무엇보다 ABL생명 전 구성원에 '디지털 DNA'를 이식해 고객을 관리하는데 초점을 맞춘다는 전략을 세웠다. 단지 몇몇 프로젝트를 통해 단기적인 디지털 성과를 얻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혁신을 위해 그가 가진 동일한 염색체 속 DNA를 복제해 조직 전체 구성원에 나누겠다는 의지다. 그에 따른 성과 창출은 덤이라고 했다.
장 전무는 "디지털 주도에 의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변화를 감지하는 구성원의 민첩성과 자신감은 가장 큰 무형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며 "디지털에 대한 경영진의 전폭적인 관심과 지원, 그리고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강한 실행력을 가졌다는 점은 자랑"이라고 말했다.
'실용성'으로 무장한 ABL생명만의 뚜렷한 색을 내겠다는 각오도 내비쳤다. 그는 "대규모 투자에 있어 충분한 검증과 확신이 없어선 안 된다"며 "기술 적용 자체보다 창출될 비즈니스 가치에 더 주목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올해도 ABL생명이 할 일은 산더미다. AI(인공지능)와 빅데이터 분석, 챗봇 기술을 접목해 고객이 어느 때고 ABL생명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한 '24·365' 상담서비스와 계약·지급심사 업무 고도화, 실시간 자동 보험금 지급 서비스 개발 등이 상반기 계획이다. 장 전무는 "디지털화는 지난 2014년부터 매년 지속돼온 ABL생명의 주요 경영 목표"라며 "항상 금융업 최초가 되는 것을 목표로 스스로를 트레이딩하고, ABL생명과 공유할 방침"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차현정기자 hjcha@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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