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멍청아, 문제는 경제야"

[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멍청아, 문제는 경제야"
    입력: 2019-01-13 18:06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멍청아, 문제는 경제야"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신년기자회견에서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와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잇따른 폭로에 대해서 각각 "직분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 "자기가 경험한 좁은 세계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즉, '개인적 일탈'(김태우)과 '종합적 판단부족'(신재민)으로 문제를 규정했다. 하지만 환경부 '블랙리스트' 존재를 공개한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과 정부의 민간기업 KT&G 사장 교체 개입 의혹 및 청와대의 적자 국채 발행 압박을 폭로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주장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DNA 역시 박근혜 정부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어쩌면 김태우·신재민 사건은 민심이반의 원인이 아니라, 민심이반을 보여주는 지표일 지도 모른다. 지난 10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50.1%로, 1년 전 같은 시기의 70.6%에 비해 20.5% 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부정적 평가는 23.8%에서 20.4% 포인트 증가한 44.2%였다. 지난 12월 말에는 문 대통령 취임이후 처음으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지르는 '데드크로스(dead cross)'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40% 중후반을 오가는 현재 국정지지율이 국민여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높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사실 여론조사가 응답자들의 속마음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의심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50년 전 독일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노엘 노이만(Noelle Neumann)은 "사람들은 소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속마음을 밝히기 두려워한다"고 지적했다. 침묵의 나선이론(Spiral of Silence)이라고 불리는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들은 먼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추정한다. 그 결과, 자신의 생각이 다수 의견과 다르다고 여겨지면 생각을 밝히지 않는 성향을 갖고 있다. 최근 국내 여론조사의 응답률은 대부분 5~7%에 불과하다. 달리 말하자면, 조사요청을 받고도 침묵하는 93~95% 사람들의 의견들이 반영되지 않았다. 응답자 5~7%의 답변 역시 속마음 그대로가 아니라, 주변 상황을 고려해서 표현된 생각이다.

역설적으로 여론조사결과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이 다수의 의견과 얼마나 일치되는 지 알려준다. 달리 말하자면, 본심을 털어놓아도 되는 상황을 알려주는 신호기 역할을 한다.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지지도가 70% 이상을 기록할 때엔 많은 사람들은 현 정부에 대해서 거의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지도가 40%후반 ~ 50%초반을 오가면 그동안 침묵했던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김태우·신재민은 이미 빨간 신호등이 켜진 문재인 정부에 대해 불만을 남들보다 먼저 터뜨린 것에 불과하다. 한동안 정치무대 뒤로 사라졌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정계복귀도 문 대통령 지지율의 하락과 맞물려 있다.

민심의 이반은 '곳간'에서 시작됐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개월 동안 소득주도성장을 외쳤지만 기업의 투자와 고용은 오히려 후퇴했다. 최저임금인상으로 종업원을 줄이는 중소상인들, 취업을 못해 대학가를 떠나지 못하는 청년들, 설익은 부동산정책으로 급등한 서울 아파트 가격, 1년 전에 비해 400 포인트 떨어진 주가, 껑충 뛰어 오르는 물가. 서민들의 삶은 더 힘들어지고 있다. 2017년 3.1%였던 경제성장률이 2018년 2.7%로 하락하고, 올해에는 2%중반도 힘들다는 전망이 나온다. 경기침체로 인해 민심이 워낙 안 좋다보니,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가까운 장래에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가 30%대로 추락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김태우·신재민 사건은 여당과 야당의 정치공방 속에 봉합되고 있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30%대로 하락한다면 또 다른 김태우·신재민이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막는 방법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답방 같은 1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난 1년 8개월의 실패를 교훈 삼는 새로운 경제정책이다. "멍청아,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던 1992년 미 대통령선거 당시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선거구호를 현 정부는 곱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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