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혁신성장 가로막는 告示제도 廢해야

[포럼] 혁신성장 가로막는 告示제도 廢해야
    입력: 2019-01-09 18:09
곽노성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특임교수
[포럼] 혁신성장 가로막는 告示제도 廢해야
곽노성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특임교수
곽노성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특임교수우리는 법치주의를 지향한다. 국회가 정한 법률에 따라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고 행정부를 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법치주의가 훼손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본래 법조문을 그대로 해석하고 이를 행정에 적용해야 한다. 실제는 다르다. 필요하면 법조문을 법적 근거로 활용하고 불편하면 사문화시킨다. 이런 행위는 어느새 관행이 되어 별다른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

신재민 전 사무관의 문제제기가 대표적이다. 정부서열 3위인 경제부총리가 비서실에 막혀 대통령과 정책을 논의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전현직 장관들은 신참사무관이 정부내 결정과정을 잘 몰라서 생긴 오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헌법에서는 대통령과, 총리, 장관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대통령 비서실이나 부처 실국장은 대통령과 장관을 보좌할 뿐이다. 대통령은 장관을 지휘할 수 있지만 비서실은 부처 직원을 지휘할 수 없다.

현실은 다르다. 대통령 비서실을 청와대라고 부르면서 대통령과 동일시한다. 청와대가 국정운영의 최종책임을 진다는 말까지 나온다. 법적으로 최종책임은 대통령이 진다. 비서진은 대통령을 보좌할 뿐이다. 이런 취지는 정부조직법에도 잘 나와 있다. 정책조정은 대통령 비서실이 아닌 국무조정실의 기능이다. 법조문만 보면 대통령 비서실의 기능은 국무총리 비서실과 같다. 이번 문제제기는 공무원 생활을 4년 밖에 하지 않은 사무관이었기에 가능했다. 행시 준비를 하면서 익힌 행정학 원리가 머리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 관행에 익숙해졌다면 그런 생각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관행이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또 다른 사례가 있다. 혁신성장을 가로막는 고시제도다. 고시(告示)는 행정규칙이라고 해서 정부기관 내에서만 효력을 갖는 것이 원칙이다. 국민에게 강제할 수 있는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 즉 법령과 다르다. 그렇다보니 법제처는 법령에 대해서만 사전 심사를 한다. 현실은 이와 다르다. 고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고시 없는 행정은 이제 상상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법원칙은 무너지고 관행이 제도화됐다. 법제처도 법령입안심사기준에서 고시는 원칙적으로 법규성을 지니지 못하지만 넓게 적용되는 현실을 부인하기 어려워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하고 있다.

고시는 공무원에게 많은 재량권을 부여한다. 식품위생법이 대표적이다. 이 법에는 딸린 고시가 25개다. 이중에는 본문 분량만 250여장인 식품공전도 있다. 이 고시의 상위 법령 근거는 법률 조문 하나다. 여기에서는 국민의 권리를 크게 제한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법률에 명시하는 식품원료의 사용제한 규제도 포함돼있다. 기술방식도 다른 법령과 달라 일반국민은 물론 법률가도 내용 파악이 쉽지 않다.

금융은 규제체계가 복잡해서 내용파악조차 어려운 대표적 분야다. 우선 다른 분야처럼 법, 시행령, 시행규칙이 있다. 금융위원회 고시가 있고 그 밑에 세칙이라는 금융감독원 고시가 또 있다. 이 분야는 공문을 통한 행정지도가 유독 많다. 법부터 공문까지 다 합치면 모두 6단계다. 법률과 규정의 2단계로 규제체계가 단순한 미국과는 비교가 안 된다. 그렇다보니 시중은행에는 규제현황만 관리하는 전담팀이 따로 있다.

지금 우리 규제는 공무원의 잦은 순환근무와 맞물리면서 사업자는 물론 담당 공무원조차 내용파악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벤처에게 새로운 도전을 하라고 권할 수 있을까? 과연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개혁이 가능할까? 고시제 폐지와 같은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행정현실을 모르는 이상적 주장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일면 동의한다. 지금 고시를 없애면 행정이 마비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할 수는 없다. 규제 환경은 점점 더 나빠질 테고 4차 산업혁명 시대 혁신성장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고시제 폐지라는 방향을 정하고 하나씩 없애야 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을 지키는게 중요하다. 행정규제기본법에 명시된 것처럼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만큼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 그 내용은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규제는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키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규제를 만드는 이유는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서이지 국회의원이나 공무원의 성과창출을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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