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배 칼럼] 美中경쟁의 복합지정학적 地平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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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0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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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배 칼럼] 美中경쟁의 복합지정학적 地平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미국과 중국 대표단이 7일부터 베이징에서 무역 실무회담을 시작했다. 양국 통상마찰은 지난 한 해를 뜨겁게 달군 쟁점 중의 하나였다. 올해도 미중마찰의 소란은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지금 벌어지는 양국간 마찰의 핵심에는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첨단부문 경쟁이 있다. 이 부문의 경쟁은 미래 패권의 향배를 엿보게 하는 선행지표다. 역사적으로 첨단부문 경쟁의 결과는 글로벌 패권의 승자를 결정했다. 가장 비근한 사례로는 20세기 전반 전기공학과 내구소비재 및 자동차 산업에서 벌어진 영국과 미국의 패권경쟁을 들 수 있다. 좀 더 가까이는 20세기 후반 가전산업과 컴퓨터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벌어진 미국과 일본의 패권경쟁이 있다. 이러한 연속선상에서 보면, 4차 산업혁명 분야 미중경쟁의 승패는 다시 한 번 미래권력의 향배를 가를 것으로 예상된다.

4차 산업혁명은 권력의 지평을 좀 더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고 있다. 무엇보다도 권력게임의 성격을 크게 바꾸어 놓고 있다. 미래권력 게임은 전통적인 물질적 '자원권력 경쟁'의 양상을 넘어서 기술·정보·데이터와 같은 비(非)물질적 자원을 바탕으로 하여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표준권력 경쟁'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권력게임의 규칙을 장악하는 자가 승리한다. 게다가 4차 산업혁명의 진전은 권력게임을 주도하는 주체도 다변화시켜서 국가 행위자 이외에도 민간 기업들과 일반 대중이 독자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공간을 늘려 놓았다.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경쟁을 논하더라도, 이를 단순히 두 영토국가 단위의 경쟁으로만 볼 수 없는 복잡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 영토국가의 발상을 전제로 한 지정학의 논리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사실 지난 수년 동안 국제정치에서는 '지정학의 부활'이 거론될 정도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지역분쟁과 보호무역정책이 빈발했다.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도 국가안보를 빌미로 네트워크 관련 보안제품의 수출입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졌다. 초국적 데이터 서비스에 대해서도 국가주권을 내세워 규제하려 했다. 타국의 주요 기간시설에 대한 해킹의 이면에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이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이러한 사이버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 오프라인 동맹을 활용하려는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사이버 안보 분야에 신냉전 시대가 도래했다는 비유가 난무하고 이를 응원이라도 하듯이 초국적이고 글로벌한 속성의 사이버 공간에서도 영토국가에 기반을 두는 사이버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이렇듯 4차 산업혁명 분야도 지정학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과거의 현실에서 잉태된 '고전 지정학'의 시각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금물이다. 오히려 변화하는 현실에 맞추어 영토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다양한 변수들까지도 포괄적으로 고려하는 이른바 '복합지정학'(complex geopolitics)의 시각이 필요하다. 특히 미래 패권 경쟁은 과거 권력정치의 반복이 아닌 질적으로 새로운 권력의 지평에서 벌어질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미중 패권경쟁은 기존의 근대 국제정치에서 영토국가들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전통적인 '부국강병 게임'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할 권력구조의 변동도 단일종목으로 승패를 가리는 '세력전이'의 모습이 아니라 종합경기를 치루고 여러 종목의 성적을 합산하는 복합적인 '세력재편'의 형태일 가능성이 크다.

복합지정학적 지평을 펼쳐 놓고 있는 4차 산업혁명 분야의 미중 경쟁에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최근 중국의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화웨이를 둘러싼 논란에서 보는 바와 같이,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미중이 벌이는 갈등의 여파는 그 사이에 낀 한국에까지 몰려오고 있다. 이 분야의 미중경쟁은 전통적인 동맹과 외교의 문제를 부과하며 조만간 한국으로 하여금 단순한 기술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좀 더 복잡한 지정학적 선택을 강요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2019년은 미중 패권경쟁에 대응하는 중견국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는 한 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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