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 칼럼] 새해엔 `진짜 몸값` 좀 높이자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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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 칼럼] 새해엔 `진짜 몸값` 좀 높이자
이규화 논설실장
새해가 밝았지만 충충하고 차디찬 감방에 갇혀 있을 한 엔지니어 기업인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다. 지난 세밑 송년모임에서 그가 직원 임금체불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는 말을 들었다. 그의 회사는 열차 신호처리시스템을 국내외에 공급하는 세계적 수준의 기술기업이었다. 연간 200억원의 매출을 올리던 이 회사는 320억원의 수주물량을 확보하고도 도산했다. 대표 스스로가 이 분야 최고의 개발자이자 엔지니어였다. 기술에 대한 자신감으로 현금 흐름을 등한히 한 채 R&D와 사업 확장에 매달린 게 화근이었다. 현금이 마르자 주거래 은행은 물론 여러 금융사, 협력업체들에 긴급자금지원을 호소했지만 허사였다.

그 신호처리기업 대표의 경우는 그나마 '나은 비운'이다. 지난 연말 온 국민의 가슴을 퍽퍽하게 만든 것은 고(故) 김용균 씨의 사고일 것이다. 김 씨는 발전소의 컴컴한 타워 내 작업장에서 헤드랜턴도 없이 손전등 하나를 들고 작업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유명을 달리했다. 김 씨가 작업했던 환경은 감옥보다도 열악했다. 캄캄한 좁은 타워 안에서 컨베이어벨트 돌아가는 엄청난 소음를 무릅쓰고 어떻게 작업을 했었을까 놀랍다. 김 씨의 죽음은 '약자는 위험한 일에 내몰려 생명까지 위협받는다'는 감성적 주장을 타고 거센 반향을 일으켰다. 고 김용균 씨의 사고를 계기로 국회는 부랴부랴 위험한 작업은 외주를 금지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 금지다.

신호처리기업 대표의 구속과 김용균 씨의 죽음은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상황을 잘 반영한다. 두 사람에게 양지(陽地 )의 손길은 닿지 못했다. 전자는 재무관리의 미숙함으로 자신의 부(富) 뿐 아니라 직원들의 임금도 한순간에 날렸다. 김 씨의 경우는 왜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못했는지 정말 궁금하다. 두 비극적 사건에서 얻는 교훈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주먹구구식이고 시스템화가 덜 됐다는 사실이다. 개인적 차원에서 그렇고 그들을 둘러싼 회사 조직이 그럴뿐더러 사후 대비하는 우리 사회의 대응방식도 그렇다.

먼저 개인과 회사 차원에서 보면, 회사 대표는 훌륭한 엔지니어이고 성실한 기업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스마트한 경영인은 못 되었다. 김 씨의 경우도 착한 기능인이었지만 자기안전을 지키는 데는 소홀했다. 왜 그와 그의 회사는 불결한 작업환경에 대해 발전소에 청소를 요구하지 않았는지 아쉽다. . 구속된 대표의 회사 조직에도 문제가 많았다. 회사 대표는 경영 부문의 심각함을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알게 됐다. 사내 직무와 책임 할당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의 경우는 하청 및 원청업체가 작업환경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과오도 크다.

사회적 측면에서 대응 방식도 문제가 많았다. 신호처리기업의 대표는 자구 노력에 전력투구했다. 그러나 근로감독관의 법적 재량권의 한계를 넘을 순 없었다. 김 씨의 경우는 작업 매뉴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있었다 해도 보나마나였을 것이다. 원청업체인 발전소는 위험 관리가 제대로 되는지 관심 밖이었다.

두 비극을 마주하면서도 우리 사회의 대응은 앞으로도 형태만 다를 뿐 계속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회사 대표는 적어도 상당기간 영어의 몸이고 직원들은 보험에서 임금을 일부 보전 받겠지만 나머지 임금은 상당기간 체불상태로 놓일 것이다. '김용균법'이 돼버린 산업안전보건법은 그야말로 앞뒤 재보지 않고 졸속 입법한 '악법'이다. 위험 관리는 전문기업이나 전문인이 맡는 경우가 세계적 추세다. 위험관리도 전문화돼야 사회 전체적으로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외주를 금지하는 것은 안전전문 산업과 기업의 육성에도 역행한다. 한 마디로 아담 스미스 이전으로 돌아가겠다는 것과 같다.

우리가 남미행 열차를 탔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베네수엘라나 아르헨티나 전에 페루부터 들러야 하는 열차가 되어가고 있다. 사회적 자산이나 가치는 합목적적 법이란 틀로 규정돼야 비로소 개인과 사회적 부가 된다. 페루가 왜 그리 가난한지 탐구했던 페루 경제학자 에르난도 데 소토가 발견한 것은 자산과 가치를 권리제도로 틀지어 놓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사회적 제도의 성숙도에 따라 개인과 사회, 국가의 부는 얼마든지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새해에는 우리 사회가 쓸데 없는 비용을 치르지 않길 소망한다. 사회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면 부는 증대되고 우리 몸값은 올리지 않아도 저절로 상승한다. 회사 대표를 구속하지 않고 자구노력을 하도록 법이 그를 지켜봤더라면 지금쯤 체불임금의 얼마라도 보전될 수 있었을 것이다. 외주의 금지가 아니라 더 완벽하게 외주시스템이 완비됐었더라면 소중한 생명을 잃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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