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쉬운 디지털`이 아름답다

이영렬 서울예술대 영상학부 교수

  •  
  • 입력: 2018-12-27 18:18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포럼] `쉬운 디지털`이 아름답다
이영렬 서울예술대 영상학부 교수

최근 들어 공공기관이나 금융기관이 모바일 앱을 주된 서비스로 만들면서 이용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카페나 패스트푸드 매장이 무인 주문계산기를 들여온 이후 불편함 때문에 단골이 발길을 끊거나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디지털 서비스가 늘어나지만 노년층 등이 그 사용을 두려워해 꺼리는 이른바 '디지털 소외현상'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필자가 10여년 전 직업을 바꿔 한 통신사의 인터넷TV(IPTV) 관련 일을 시작하면서 어머니를 인터넷TV에 가입시킨 직후였다. 어머니는 단호하게 "네가 만드는 서비스를 해지했다"고 하셨다. 이어 "TV가 꾹 누르면 켜지고, 꺼져야지 당최 어려워서..."라고 말끝을 흐리셨다. IPTV가 처음 나온 2008년 당시 리모컨은 TV와 셋톱박스를 켜고 끄는 데 각각 2개씩 무려 4개의 버튼이 있었으니 어머니의 불평과 해지는 당연했다. 필자의 머리에는 '한 번만 꾹 누르면 켜지고 꺼지는' 리모컨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결국 2011년 그것의 발명 아이디어를 찾게 되어 버튼 한 번만 누르면 TV와 셋톱박스가 동시에 켜지게 하는 리모컨을 상용화할 수 있었다. 지금은 모든 IPTV와 디지털 케이블TV가 사용하는 '원 버튼' 리모컨이었다. 이 리모컨이 나오고 해지는 많이 줄어들었고, 콘텐츠 사용은 크게 늘어났다.

사회과학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앱이나 무인 주문계산기, 인터넷TV 등 무언가를 사용하고 싶을 때에도 사용할 능력이 없으면 행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먼저 서비스를 쓰기 쉬울 것 같다고 생각되어야 그것이 쓸모 있다거나 즐거울 것이라고 믿어져 사용할 의도를 갖게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사용의 용이함이 써야겠다는 마음을 내게 하는 첫 단추이고 사용을 늘리는 촉매제인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뇌가 꼼꼼하게 따져보는 데 힘쓰는 것을 싫어하고 그냥 습관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은 모두 이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하나같이 광고 등에 '사용이 쉽다'고 내세우고 있다. 가전사가 만드는 스마트TV가 '너무 똑똑해도 탈이라, 기능을 확 줄였다'고 하거나 스마트폰 제조회사가 '기존 폰이 복잡하여 쉬운 폰을 낸다'고 발표하는 게 그런 예다. 쉬운 사용으로 대박을 친 모바일 송금앱 '토스'(공인인증서 불필요) 등 성공사례도 많다. 특히 세계 최대 온라인 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와 아마존은 전체 직원들이 따라야할 미션(사명선언문)에 '쉬운 사용의 중요성'을 못박아 두었다. 알리바바의 미션은 "어디에서든 사업을 하는 게 '쉽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아마존의 미션은 "고객에게 최저 가격 및 최고 구색과 함께 최상의 '편리함'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창업한지 20여년도 안 돼 세계 최대 온라인 상거래 기업을 일군 두 최고경영자 마윈과 베조스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꿰뚫어 보는데 남 다른 것 같다.

그럼에도, 아직도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느껴지고 실제 어려운 게 계속 나오는 것은 왜 일까? 제품·서비스의 단순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론과 성공사례들이 널려 있는데도 여전히 어려운 서비스가 더 많은 것은 무엇 때문인 것일까? 그것은 소비자가 '쉽게' 이해해 쓰도록 이끄는 제품을 만드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개발자인 엔지니어는 새로운 기능을 자꾸 추가해 복잡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 자신의 실력도 보여주는 것이고, 혹시라도 경쟁사 서비스에 그 기능이 나왔을 때 책임을 피할 수 있다. 사용단계를 줄이거나 단순하게 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나 수익창출·규제 등 때문에 어려울 수도 있다. 또 사용하기 쉽게 한다는 것은 기능의 단순함 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고 소비자자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쓰고 싶도록 만드는 것도 포함한다. 이 모든 것들이 잘 이뤄지면 되나, 실제 개발을 추진해 보면 칸막이 식의 조직구조나 협력업체와의 협업 미흡 등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들이 많다. 그러기에 세계 최고 인터넷 기술업체 구글이 출시한 스마트TV가 너무 복잡하고 헷갈린다고 혹평을 받아 결국 접었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쉬운 윈도폰'을 요란하게 출시했으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것이 아닐까. 소비자들이 척 보면 무엇에 쓰는지 알고 마음 먹은대로 착착 돌아가는 서비스를 만들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영국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는 자신의 책 제목으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했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운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는 노년층 등의 디지털 소외를 막기 위해서라도 '쉬운 것이 아름답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다만,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어렵다'는 말은 '힘껏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