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범철 칼럼] 진인사대천명과 淡淡打打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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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2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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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칼럼] 진인사대천명과 淡淡打打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


북한의 연이은 노 쇼(No show, 회의장에 나오지 않음)로 뜨겁게 출발했던 한 해가 차갑게 끝나가고 있다. 북미 고위급 대화도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도 올해는 물 건너갔다. 그간 정부는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말을 곧이 믿고 대화를 밀어붙였다. 하지만 12월 말 현재 남북관계와 비핵화 속도의 균형은 깨진지 오래고, 남북 협력사업도 이산가족문제와 같이 우리가 원하는 협력은 뒤쳐진 채 북한이 원하는 것만 진행되고 있다.

최근 북한의 행보는 핵무기를 어떻게든 보유하겠다는 의도를 잘 보여준다. '완전한 비핵화'를 말하고 있지만, 속내는 주한미군 철수를 목표로 하는 과거의 '조선반도 비핵화'를 염두에 둔 듯하다. 그렇기에 핵물질 보유량을 추적당할 수 있는 신고와 검증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고위급 회담이 개최될 경우 신고와 검증 문제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이를 건너뛰려 하고 있다. 그 대신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서 신고와 검증을 약식으로 끝내려는 듯하다. 돌아보면 6자회담 당시 북한이 주장한 검증 방식은 실질적인 시료 채취 없는 단순 참관이었다. 최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나 동창리 미사일 엔진실험장 부분 폐기 역시 참관 수준의 검증만을 주장하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바로 개최된다면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영변 핵시설 폐기와 미국의 참관을 제안할 것이고,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수용할 경우 시료채취나 의심시설 사찰과 같은 실질적 검증은 불가능하게 된다.

물론 미국이 이러한 제의를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국무부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고위급회담 이후에 정상회담을 개최할 것을 건의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대화가 지연될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안게 될 부담과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정치적 상황에 따른 즉흥적 의사결정이 맞물릴 경우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을 북한이 노리고 있을 것이다. 한편, 북한은 이 과정에서 미국의 부정적 여론을 돌릴 결정적 카드가 있다. 바로 장거리미사일이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포기하고 미국에 보내기로 한다면, 불완전한 검증에 따른 여론 악화를 뒤엎을 결정적 카드가 될 것이다. 금년 초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검증 없는 비핵화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태도다. 최근 정부의 행보는 너무 대화에만 집착하고 있다. 이런 태도라면 북한과 미국이 어떠한 합의를 해도 대화에 진전만 있으면 좋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미국이야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장거리 미사일 문제를 먼저 해결하면 나머지는 천천히 풀어도 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장거리 미사일이 사라진다 해도 북한에 핵물질이 남아 있다면 스커드나 노동 미사일에 실려 우리에게 날아올 수 있다. 불완전한 합의야 말로 대한민국 안보에 최악의 상황인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보다 적극적인 비핵외교를 전개해야 한다. 북한에 대해서는 보다 분명한 비핵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비핵화 개념은 6자회담 '9.19 공동성명'에 있는 내용과 같이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한다"는 것임을 확인해야 한다. 만일 북한이 철저한 신고와 검증을 회피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때까지 핵무기를 갖고 있겠다면 북한의 경제적 미래는 없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미국에 대해서도 한국의 안보이익이 존중되는 협상만이 수용 가능함을 엄중히 전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대화만을 추구하며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북한의 변화를 기다리는 것은 옳지 않다. 협상의 성공을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하고, 그 힘을 능동적으로 써야 한다. 다행이 지금 우리는 힘이 있다. 세계10위권의 경제력과 외교력은 국제사회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큰 힘이다. 하지만 있는 힘도 쓰지 않고 상대의 선의(善意)에 기대며 끌려간다면 제대로 된 협상은 불가능하다. 지금이라도 특사를 파견해 제대로 된 대화를 추진해야 한다.

국공내전에서 초기에 열세였던 모택동이 장제스를 이긴 전략전술은 '담담타타'였다. 자신이 처한 환경을 냉정히 판단하고, 대화를 하면서도 공격하고 공격을 하면서도 대화하며 유리한 국면을 조성한 것이다. 어찌 보면 비겁했지만 그러한 행위조차도 모두 동원한 총력전을 전개한 것이다. 우리가 북한과의 관계에서 담담타타 할 것을 주장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북한이 우리에게 담담타타 할 수 있다는 것을 정부가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한 해가 저물 무렵 새해를 기대하며 드는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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