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과학에 갑질하는 국가권력

이준기 ICT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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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과학에 갑질하는 국가권력
이준기 ICT과학부 기자

"언제까지 과학이 국가권력에 무참히 휘둘려야 합니까…."

요즘 과학계가 폭발 직전이다. 정치적 이념과 진영 논리에서 살짝 비켜나 있는 과학계가 정부에 분노 섞인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역대 어느 정권도 과학계를 이렇게까지 하찮게 하지 않았다는 자괴감과 절망 섞인 얘기들도 들린다. 수 년째 과학 연구현장을 취재하면서 쉽게 목격할 수 없었던 과학계의 싸늘한 여론에 '여태껏 이런 적이 있었을까'라며 귀를 의심할 지경이다. 정부에 대한 과학계의 불신 수위가 한층 높아지고 있음을 체감하는 요즘이다. 연구실에서 혹은 실험실에서 연구에만 매달려 온 과학자들이 왜 이토록 정부를 향해 성토하는 이유는 뭘까. '대한민국 과학의 심장'인 대덕특구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과학계에서 명망있는 과학자 2명이 정부로부터 곤욕을 치렀다.

첫 번째 인사는 원자력 분야의 전문가인 하재주 전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이다. 그는 지난달 특별한 이유 없이 3년 임기 중 1년 8개월을 남겨두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연구원뿐 아니라 원자력계 선후배 및 동료로부터 신망이 두텁고, 화합형 리더십을 통해 원장 취임 이전에 불거진 연구원의 각종 사고·사건 대응과 현안 해결에 발벗고 나섰던 그였기에 이임식에 참석한 직원 모두 기립박수를 통해 그의 퇴장을 아쉬워했다.

탈원전 정책을 지향하는 이번 정부는 처음부터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전 정권 인사'로 낙인을 찍어 '내 보내야 할 사람'으로 정한 것이다. 사퇴 압박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돼 시작됐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임기 이전에 발생한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연구원을 꿋꿋이 지키면서 혁신하려고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또다시 사퇴 압박이 들어왔다고 한다. 연구원의 미래를 위해 물러날 수 없었다. 이번에도 그 압박을 견뎌내자, 국감에서 의원으로부터 노골적으로 사퇴 추궁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정부에 두손을 들었다. 더 이상 원장직을 수행하다간 26년 간 근무한 연구원이 더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저의) 사임이 위기를 넘기는데 일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연구원의 미래를 위해 기관장으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기죽지 마십시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정든 연구원을 떠났다.

언론에선 "하 원장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적극 나서지 않아 사퇴압박을 받아 물러났다"고 보도했지만, 임면기관인 국가과학기술연구회도 상위기관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그가 돌연 사퇴한 이유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평소 언론의 잘못된 보도에 적극 대응하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두 번째 인사는 하 원장이 정부의 사퇴압박으로 물러난 지 열흘이 지나 불거졌다. 이번에도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전 정권 인사'이자 '친박계 과학자 출신'으로 분류된 신성철 KAIST 총장이 타깃이었다. 정부가 신 총장에게 덧씌운 것은 과학자들의 '아킬레스건'과 같은 연구비 횡령과 제자 편법채용 의혹이다. 30년 넘게 '나노 자성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명망을 쌓아온 그의 연구인생이 한 순간 폄하되고 부정되는 치욕적 순간이다. 이 역시 2014년 신 총장이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 때 있었던 일로 4년이 지난 후 과기부 감사를 통해 들춰낸 것이다. 얼마나 급했으면 과기부는 신 총장을 검찰에 고발한 데 이어 곧바로 KAIST 이사회에 '총장 직무정지 요청'이라는 초강수를 뒀을까. 직무정지 요청 소식을 접한 신 총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신과 관련된 혐의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며 자신의 결백을 호소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논란이 되고 있다. 우선, 감사 결과 당사자인 신 총장이 자신에 대한 감사 결과를 알지 못한 채 언론보도를 통해 뒤늦게 알았다는 점이다. 감사결과에 대한 소명의 기회도 주지 않고, 마치 감사 결과가 정확한 팩트인 양 알린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여기에 검찰고발과 직무정치 요청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정부가 통상적인 감사 프로세스와 달리 이처럼 의혹 수준인 신 총장의 비위행위들을 낱낱이 알려야 하는 이유는 뭐였을까.

물론 비위행위가 있었다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처벌과 책임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신 총장에 대한 감사는 절차적 정당성이 무시된 '표적 감사'였다고 평가할 수 밖에 없는 정황적 근거가 수두룩하다. 이로 인해 KAIST는 크게 동요하고 있다. 정부가 보다 많은 자율권을 주고 지켜줘야 할 대상을 관치로 통제하고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무서운 기세로 우리를 앞서려는 중국은 '과학굴기'를 내세워 해외에 있는 유수의 과학자들을 최고의 대우와 예우를 갖춰 자국으로 모시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정치권력으로 과학자를 옭아매며 통치 수단으로 여긴다. 이런 상황에 해외에 있는 한국인 과학자들이 과연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을까.

'실리콘밸리의 대부'로 불리는 미국 스탠퍼드대 존 헤네시 총장은 2015년 15년 간의 총장직을 끝으로 스스로 물러났다. 그가 장장 15년의 총장 생활을 접은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더 이상 대학을 위해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일이 가능한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이준기 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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