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주욱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
![[포럼] 페이스북에 10년형이 될 개인정보법](http://contents.dt.co.kr/images/201812/2018120602102269640002[1].jpg "[포럼] 페이스북에 10년형이 될 개인정보법")
몇 년 전 구립 도서관에 회원증을 신청하러 가서 겪은 일이다. 개인 정보 보호법 때문에 주민등록증을 받지 않는다며 공인인증서를 요구했다. 정부가 발행한 주민등록증을 공공기관에서 받지 않는다면 주민등록증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져 보았지만 거절당했다. 주민등록증을 받지 않는 이유가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라면 소지자의 서명을 받으면 되지 않는가. 상급자인 과장에게도 말해 보았지만 '개인 정보 보호법 때문에' 라는 신성 불가침한 어구만 돌아왔다. 공인 인증서가 무언지도 모르고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그 도서관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이제는 주민등록증을 받는다 한다. 쓴 웃음이 나왔다. 왜 이런 혼선이 빚어져 개인들을 불편하게 하는가? 개인 정보 보호법을 한번 읽어 보았다. 벌칙이 최고 10년 징역, 1억 벌금으로 매우 높고 개인 정보의 대표적인 사례로 주민등록번호가 나온다. 주민등록번호를 받아서 잘못 관리할 경우 10년형까지 받을 수 있다. 주민등록증을 받지 말라는 조항은 없다. 그러나 규정이 추상적이며 포괄적이어서 지키기는 어렵고 걸리기는 매우 쉽다.
지키기는 어렵고 걸리기는 쉬운데 벌칙은 센 법령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발생 가능한 모든 경우를 대비하려고 할 것이다. 공무원들은 민간 기업에 규제를 더 심하게 할 것이고 은행, 보험회사들은 우리에게 더 많은 서류에 서명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개인들은 읽어 보지도 않고 클릭하고 서명한다. 개인들의 삶을 이토록 복잡하게 하면서 얼마나 개인 정보를 보호할까? 낯선 사람이 전화해서 내 이름, 직업등 개인 정보를 술술 말하는 걸 들어 보면 보호가 잘 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개인 정보 유출이 자주 이슈가 되자 이를 해결하고자 개인 정보 보호법을 만든 국회의원들의 의도는 이해한다. 이제까지 발생한 침해 사례도 모두 포함하고 IT 기술의 발전에 따라 지능화 될 미래의 개인 정보 침해까지 처벌할 수 있는 '미래형 개인 정보 보호법'을 만들려고 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법 조항이 추상적, 포괄적이 되었을 것이다. 법령에서는 개인 정보를 이렇게 정의한다. '해당 정보만으로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하여 알아볼 수 있는 것을 포함 한다', 인공 지능의 발달로 영상, 음성, 사물 인터넷 등을 결합하여 개인 정보를 인식하는 것까지 고려한 미래 지향적인 법이다. 최근 나온 '서치'라는 영화에서는 아빠가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페이스북, 유튜브, CCTV 영상 등을 지능적으로 결합하여 실종된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내고 결국 딸까지 찾아내는 걸 보여준다.
그러나 미래 지향적인 개인 정보 보호법이 기업들의 미래, 더 나아가 우리 경제의 미래까지 빼앗을 수도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기업들이 인공지능, 빅 데이타, 사물 인터넷 등을 결합한 4차 산업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려는 노력을 할 때 '미래 지향적인' 법이 미래를 가로 막는 모순을 불러 올 수 있다. 이 법의 추상성, 포괄성은 기업을 쉽게 처벌할 수 있게 한다. 법의 목적이 문제가 생겼을 때 기업을 크게 벌주기 '쉽게' 만드는 데 있다면 잘 만든 법이라 할 수 있다. 이 정도 법이면 페이스북에 10년형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개인 정보 보호법이 페이스북 창업자에게 10년형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시가 500조의 페이스북 같은 기업이 자라나게 할 수는 없다. 개인 정보 보호법이 엄격한 유럽보다 유연한 미국에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에어비앤비, 우버 등 인터넷 초(超)대기업이 많다.
개인 정보를 함부로 취급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다만 처벌 규정이 엄격하니 처벌 대상이 되는 범죄를 누구나 쉽게 판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하여 알아볼 수 있는 것을 포함' 이라는 법 조항은 절대 '쉽게' 판별할 수 있는 조항이 아니다. 창의력 높은 우리 민족은 세계적인 인터넷 기업을 키울 수 있다. 싸이월드가 지금의 페이스북 자리를 차지하여 우리 젊은이들로 가득 찬 모습을 상상해보자. 이것이 우리가 버린 미래 중의 하나이다. 완벽한 개인 정보 보호에만 집착하지 말고 개인 정보 보호와 미래 먹거리 산업이라는 상충되는 목표 사이에 균형을 잡는 방향으로 개정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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