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일자리 부도의 날

김광태 디지털뉴스팀장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DT현장] 일자리 부도의 날
김광태 디지털뉴스팀장
모든 것이 멈췄다. 지난달 24일, 평온하던 주말. 느닷없이 통신이 끊겼다. 일상이 뒤죽박죽 돼버렸다. 휴대전화도 인터넷도, 신용카드도 소용없었다. 통신구 화재가 만든 웃픈 현실이었다. 무덤처럼 고요하던 공중전화가 아직 살아있노라 외치는 소리를 듣게될 줄 몰랐다.

정보통신 강국 코리아는 거기까지였다. 아마게돈이 언제든 현실로 등장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을 겸연쩍게 인정하게 만든 것이 이 사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그나마 소득인지도 모른다. 사고는 없을 수 없지만, 언제든 플랜B는 있어야 했다.

일자리문제도 그렇다. 청주에 사는 20대 가장 A씨. 그의 딱한 소식을 들었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 손에 자라났다. 직장생활을 성실하게 감당했지만 아버지가 암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직장일도 어려워졌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급기야 해서는 안될 일에 손을 대고 말았다. 몇 달간 새벽 시간대 문을 닫은 식당에 몰래 들어가 현금과 식용품을 훔쳤다. 법원은 고심 끝에 그에게 형 집행 대신 '청년 일자리 교육'을 수강하라며 선처성 판결을 내렸다.

삶의 터전이 흔들리고 가정이 쪼개진다. 그 중심엔 역시 일자리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당초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세 가지 핵심과제로 경제정책 틀을 짰다. 그런데 최근 이 세 가지 경제정책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며 모두 위기에 빠지는 '트릴레마'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소득 증가는 체감되지 않고, 혁신은 둔화되고 있다는 것이 세간의 지적이다.

올해 실업급여 지급액이 6조5000억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고용보험 통계를 보면 올해 9월까지 실업급여 지급액은 5조377억원으로 집계됐다. 매달 평균 5597억원이 실업급여로 지급됐다. 충격적이다.

자영업자들이 많이 몰려 있는 숙박·음식점업의 일자리는 또 어떤가. 지난달 통계 작성 이래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숙박·음식점업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9만7000명 감소했다. 고용과 설비투자, 소비 등 각종 경제 지표가 좀체 개선될 조짐이 없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10.9% 인상된 8350원(월급174만5150원)으로 정해졌다. 고용시장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메뚜기 알바'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편의점마다 돌아가며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하는 젊은 청춘들도 많다. 점주의 비용 부담 때문에 하루 8시간 일하던 근무시간을 5시간으로 줄인 까닭이다. 메뚜기처럼 이곳저곳 옮기는 청춘들의 밤은 잿빛 풍경화처럼 우울하다.

고용의 질 또한 악화되고 있다. 임시·일용직이 다수인 36시간 미만 근로자수는 지난 1월 17만5000명에서 10월 현재 21만7000명으로 무려 4만2000명이 늘었다. 반면, 54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수는 21만8000명에서 18만7000명으로 3만1000명이 줄었다.

그러나 정부는 상황 인식이 많이 다른 듯하다. 지난 18일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양적 측면에서 엄중한 상황이지만 일자리의 질이 개선되는 측면은 있다"고 말했다.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었다. 소득주도성장 등 분배에 치우친 정책이 오히려 공공과 민간 부문의 경제 양극화를 더 심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일자리는 뒷걸음질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등에 따르면 2021년까지 단계적으로 인상되는 최저임금 영향으로 국내 일자리는 올해 6만8000개에 이어 내년에는 9만8000개가 사라질 것으로 추정됐다.

정부의 책무가 무겁다. 정부는 현 경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의 정책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다려달라고 하기엔 너무 무책임하다. 21년전 IMF 경제위기의 참상을 그린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개봉됐다. 영화제목치곤 참 까칠하고 불편하다. '나라가 망한' 잊고싶은 과거를 전격 소환한다. 주연으로 분한 김혜수는 "오늘날 청년세대와 중장년층이 경제활동에 좌절을 겪게 된 근원이 거기에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화가 나는 정도가 아니라 피눈물이 나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일자리 부도의 날'은 아닌지. 일자리 창출의 플랜B는 어디에 있을까. 궁금하기만 하다.

김광태 디지털뉴스팀장 ktkim@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추천기사